1. 나는 국어교과의 특정 분야로 대학원 등 가는 건 안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업하다보면, 국어과의 모든 분야는 융합되고 통섭된다. 문학독서토론이 내 주특기인 것만 봐도^^;
2. "한 우물만 파라."는 속담은 이제 유효하지 않은 듯. 현장에 기반한 넓은 시야가 중요하다.
3. 근데 내가 무학, 서울에서 여자애들만 가르치다보니...국어수업이 더 잘돼서 그런지도^^;; 다음 학교는 공학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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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훈샘 글>
중세국어 문법을 더는 수능에서 보지 않아도 된다. 올해 수능 감독을 하면서 이 점이 국어교사인 나에게는 감동스러웠다. 2014년에 수능 언어 영역이 국어로 명칭이 바뀌면서 퇴행한 부분이 2021년 11월에 와서야 바로잡혔다. 올해는 2015 교육과정이 수능에 처음 적용된 해다.
지난 몇 년 동안 중세 높임법, 중세 문법을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의 눈빛이 급속도로 흐리멍텅해졌다. 아마 대부분 학교의 교실에서 비슷했으리라. 이걸 배워서 학생이 자기 인생에서 어디다 써먹을까 교사부터 의심이 한가득한데, 그게 수능에 나온다는 이유로 가르쳐야 했으니, 답답했다. 어떤 때는 모욕당하는 느낌까지 있었다.
1994년에 수능이 처음 생기고 2013년까지 20년 동안 국어 문법 지식은 수능에 나오지 않았다. 학문을 하는 데 필요한 말과 글을 다루는 능력을 본다는 취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때 굉장히 보수적인 인사인 ㅁ이 국어 교육과정 개정의 책임자가 되면서 (내 관점에서는) 2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놓았다. (참고로, 나는 ㅁ이 학회에서 김구의 '나의 소원'이 편파적이라며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어안이 벙벙한 적이 있다. 또 무슨 국가시험 출제에서 만난 그는 신영복 선생의 글을 시험 제시문으로 가져온 나를 보고, 보수인사들이 사납게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며 극구 반대해서 결국 시험에 내지 못했다.) 그때 국어교육 연구자를 여럿이 나와 만날 때 말도 안 된다고 울분을 토해놓던 기억이 선하다. 그게 어느덧 팔구 년 전이다.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어교육이 퇴행하고 몇 년이 지나서 국제학력평가에서 한국 학생들이 국어 점수의 순위가 많이 낮아졌다.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도 더 벌어져서 지표가 나빠졌다. 상위권 학생들이야 어떻든 수업을 따라오지만, 중하위권 학생들은 중세 문법 같은 걸 가르치니 학생들이 국어 시간에 흥미를 잃어버린 결과였다.
그 뒤에 2015 국어과 교육과정 작업을 할 때, 과도한 문법 지식 교육에 대해 대다수 연구진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바로잡으려고 교육과정 작업에서 신경 쓰고, 무엇보다 수능에서 문법이 선택과목이 되게 하려고 애쓴 사람들이 있어서, 7년만에 수능 국어가 나아질 수 있었다.
2021년에 고3이 본 2022 수능에서는 <독서>와 <문학>이 공통과목이다. 그리고 <화법과 작문>과 <언어와 매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문법은 <언어와 매체>에 들어가 있어서, 이제 문법 지식은 그것을 원하는 학생만 시험을 보게 됐다.
국어교육 전공자가 아닌 분들에게는 이게 무슨 이야기야 싶겠다. 하지만 국어교육계 안에 있는 나에게는 그저께 받아든 시험지가 감동이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누군가에게 욕을 강렬하게 듣더라도 학생의 인생을 더 먼저 생각한 이들의 용기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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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답글>
안녕하세요 선생님^^댓글 처음 다는 것 같은데 질문부터 드려서 송구합니다ㅜㅠ
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과도한 국어지식 교육이 아이들의 국어에 대한 흥미를 저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의 고민을 조심스럽게 질문 조금만 드려도 될까요?
1. 올해 1학년 국어에서 훈민정음으로 중세문법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중세국어를 잘 알아야 현대국어도 잘 알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ㅎ종성체언의 변천을 알면 '수개'가 아니라 왜 '수캐'인지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중세문법이 필요하지는 않을까요?(수능에 나와야한다는 것과 별개로요.)
2. 저는 언매가 선택과목이 된 것을 반대했었습니다. 이유는, 문법을 기본적으로 알아야 문학과 독서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글의 구조는 물론이고, 문학의 수사법도 대부분 문법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저의 좁은 소견을 넓혀주시는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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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봉 선생님 자세히 생각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물어보신 부분에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수개'가 왜 '수캐'인지를 아는 것이 저는 고등학교 수준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학생들이 쓰는 글을 보면 문장과 문장의 논리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자주 있습니다. 글을 논리적으로 쓰는 능력이 학생의 인생에 필수로 필요하다고 보고, 거기에 교육을 집중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수개와 수캐가 왜 다른지는 교육의 우선 순위에서 한참 뒤에 있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2. 글을 더 잘 읽고 쓰는 데 필요한 문법 교육에 찬성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수능 국어와 올해 수능 <언어와 매체>에 나온 문법 문제를 보면, 독서와 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중세 문법, 문장성분이 몇 개인지를 세는 문제를 보면서, 저는 문법 교육은 아직 근대화가 안 되었구나라는 생각했습니다.
제가 교사가 된 20년 전에는 문학 교육과 독서 교육도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독서를 잘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독서 교과서가 아니라, 독해 이론을 지식으로 가르치는 독서 교육이었습니다. 문학 교과서에도 온갖 문학 이론이 나와서 그 개념을 외우는 교육이었고, 실제 문학을 감상하고 향유하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독서 교육과 문학 교육이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면서 변화에 성공했는데, 문법 교육은 아직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 점이 안타깝습니다. 언어학, 국어학, 문법 안에 좋은 내용이 얼마나 많은데 중세 문법과 문장 성분과 파생어 관련된 문제가 아직도 나오는가 싶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독서와 문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문법 교육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문법 교육이 달라진다면, 문법 교육에 대한 저의 태도도 응원하는 쪽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선생님 정중하게 물어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질문해주시면, 어떤 내용이든 제 생각을 가리지 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