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쪽: 시험의 형식과 요구사항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잘못된 영향을 미친다.

231~233쪽: 고등학교 공교육의 역할

:

44쪽: 꿈. 현재가 미래에 포섭되는 것.
50쪽: 꿈의 차이 / 꿈과 서사의 결합 차이
54쪽
75쪽: 입시보다는 학교 참여가 관건
134쪽: 후기근대성의 사회 논리와 학교 교육의 변화: 초등교사의 노동 경험에 관한 연구
186쪽: 학교교육에서 학생들은 사물화된 세계를 학습한다.
190쪽: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교육의 목표가 과연 입시인가?
228쪽: 생애 과정의 탈표준화
235쪽: 좋은 삶은 심원하고 도달하기 힘든 이상적 완전함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일어난다.
245쪽: 슬픔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280쪽: 이 소설들의 선풍적인 인기는 한편으로는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성직자들은 소설이 부모와 교회, 공동체의 도덕적 권위는 물론 종교와 사회질서의 원리를 손상시킴으로써 천박함과 도덕적 타락을 야기한다고 개탄했다. 도덕주의자들은 소설이 특히 하인과 소녀들의 마음에 불만의 씨앗을 뿌리게 될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비난에 맞서 소설을 옹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도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퍼져 나갔다. 소설은 독자가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처지와 고통에 공감하게 함으로써 도덕성을 고취시킨다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소설은 타인들이 자아를 가진 존재이자 내면성을 가진 자율적 존재임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내면의 감정을 확장시키고 사회적 유대를 새롭게 강화하며 도덕성을 고무한다. 공감을 통한 도덕화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볼 때 종교적 차원이 아닌 일상의 세속적 삶이야말로 도덕성의 토대가 되며, 평범한 독자들은 타인을 근본적으로 동등하게 생각함으로써 스스로 도덕적 세계를 만들고 평등을 배우게 된다.

288쪽: 연대는 연구나 성찰을 통해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편견을 제거하거나 탐구함으로써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내재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인간의 연대는 타인들을 상세하게 그려내고 묘사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그들'이 아니라 '우리 중 하나'로 느끼게 하는 상상력을 통해 가능해진다. 이것이 바로 문화기술지ehnography, 언론 기사, 만화책, 다큐드라마, 그리고 특히 소설과 같은 장르-즉 이야기-의 과제다. 찰스 디킨스, 올리브 슈라이너, 또는 리처드 라이트의 소설은 이전까지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사람들 ㅡ 노동자와 여성, 흑인-이 겪는 고통을 상세하게 그려냈다. 소설과 영화, TV 프로그램이 도덕적 진보와 변화의 주요 수단으로서 설교와 논문을 대체하게 되었다고 리처드 로티가 말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야기는 타인의 불행과 고통에 감응하게 할 뿐 아니라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직관을 갖게 함으로써 현재의 사회제도와 구조에 내장된 부정의를 인식하게 만든다. 서로를 연결되고 연관된 존재로 느끼는 상상력을 제공함으로써 공유된 책임에 대해 사유하게 하며 인간의 연대를 창조해 낸다. 다시 말해 이야기는, 현재의 세계를 지금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보라고 요청한다. 당신이 속한 집단, 당신과 비슷한 존재의 시각에 갇히지 말 것을 요청한다. 그럼으로써 이야기는 지난 수세기에 걸쳐 낯선 타인들을 연대의 대상으로 불러들이고, 구조적 부정의를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며, 사람들이 속한 (그들이 스스로 속해 있다고 믿는) 세계를 넓혀 왔다.

297쪽: 인간의 사유가 자기 자신 안에 같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어 확장할 수 있게 만든 중요한 힘은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연민하며 슬퍼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야기는 타인의 삶과 슬픔에 대해, 우리가 속한 이 사회와 이 세계에 대헤 생각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속한 사회와 세계를 사고하고 인지하며, 판단하고 평가하게 된다. 린 헌트와 아이리스 영, 찰스 틸리를 경유해서 우리는 이야기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학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야기는 타인에 대한 상상된 공감을 가능케 한다. 지극히 소박하게 보이는 이 특징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라는 관념을 가능케 한 역사적 원동력이었다. 이야기는 성별이나 신분, 계급, 민족, 인종이 다른 이질적 존재를 향한 공감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다. 나아가 이야기는 오늘날 사람들이 점점 더 소홀하게 취급하는 구조적 부정의를 드러낸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단지 타인의 불행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무언가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직관을 얻고 구조적 부정의를 인식하고 사유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화자와 청자, 쓰는 자와 읽는 자 사이의 관계를 반영하고, 주장하고, 협상하며, 변화시킨다. 내가 이 책을 이야기로 썼다는 것은 당신과 나의 관계에 대해서도 무언가 말하고 싶었다는 의미다.
오늘날 우리는 이야기가 위기에 처한 사회를 목도하고 있다. 공감의 위기,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사유의 위기, 관계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미지의 타인이 나와 같은 존재라는 상상, 타인의 불행이 내가 함께 속한 구조로부터 기인한다는 감각,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서로에게 더 많이 말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 은 점점 더 허약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위기는 곧 사회의 위기이기도 하다. 사회의 위기란, 사람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망각되거나 간과될 때 벌어지는 사태다.


■ 이 책의 저자 조은주는 사회학자로서 절망의 풍경을 섬세히 기술한다.
그러나, 책에는 희망의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희망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하는
교사 실천가이다.
희망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

일반적으로 상대평가의 역설, 좀더 확장해서 평가의 역설은 다들 알고 있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으로, 목표의 역설도 있다.

이번 여름에 채니랑 경주국립박물관 관람을 했다.
먼저 일반 전시실을 관람하고, 다음에 퀴즈 미션을 수행하는 관람을 했다.

매년 경주에 오는데,
올해는 확실히 박물관을 감상하는 채니의 눈이 넓어졌다.
일반 전시실의 유물들을 보면서
"멋지다! 신기하다! 예쁘다!"를 연발하고
질문도 많이 하고
적극적으로 관람했다.

근데 미션을 수행하는 관람을 시작하자.
감탄과 경탄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이거 답이 뭐야?"가 생겼다.
재촉하고, 목표지향적이 되고, 잘 안 되자 짜증도 냈다.

목표가 즐거움, 기쁨을 잡아먹은 것이다.

물론 교육에 목표가 없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가끔은,
목표 없이
그냥, 재미로
여유 있게 누리고 즐기고 완상할 수는 없을까?

:

역시, 추리소설이 재밌다.
특히 직장생활 소재라서 더 꿀잼.^^

다 읽고나니 무*고 외계인 김X2 부장,
서*고 1년차 교무부 난장판이 생각나네.😂
블랙독2 쌉가능.ㅋ

:

122쪽: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다만 가장 높이 올라간다면 지배할 수는 있어. 바꿀 수는 있어. 그 정상이 바로 하버드야. 그리고 그게 내가 학교로 다시 돌아온 이유야. 다른 곳이 아닌 이 수도외고로."

교육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

이번 소설집은 캐릭터가 어려웠지만,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끝까지 읽어냈다.

조예은, 아메이니아스의 칼
임선우, 지상의 밤: 히키코모리
리단, 레지던시: 소설가의 창작통
정지음, 안뜰에 봄: 정원이의 추리소설
전건우, 없는 사람: 사이코패스 추리소설가의 망상 인물

:

성혜령, 임장: 부동산, 집, 모임, 공감, 연대
이주란, 산책: 관계
한지수, 목소리들: 미투 운동, 중립

:

게임 업계 이야기
회사(퇴사) 이야기

:

유충렬전
홍길동전
박씨부인전
사씨남정기
(계속)

:

가볍고 쉬운 소설.
소설에 대한 소설.

:

AI 판사 소재의 앤솔러지인데,
기대만큼은 아님.

:

'하늘에 계신' 하지마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지마라, 아들딸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마라, 자기이름을 빛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지마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마라, 내뜻대로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마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마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마라, 죄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마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

출처:2004. 11.17 문화일보- 우루과이 한 작은 성당 벽에 써있는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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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견 가벼워보이는 소설이지만(내용만이 아니라 책도 가볍다.)
문체가 청소년 소설, 혹은 노래 가사 같아서 그럴 뿐
내용은
네 소녀의 무거운 상처를 담고
스토리도 파국이 있어서
소설을 읽다가 다시 돌아가서 되새김질했던 부분이 여럿 있었다.

나의 상처도
돌이켜보게 되는 소설.
상처의 연대.

:

단편 [관리의 죽음]:
민음사tv에서 공승연이 추천한 작품인데, 정말 재밌다! 수업 때 쓰기 최고! 일단 짧고(읽는 데 10분도 안 걸림), 인물 심리가 흥미진진하며, 사과하는 말하기 수업에도 최적. 역할극에도 좋음.

단편 [거울]: 인생의 미래를 보는 거울이 있다면?

[내기]: 15년 동안 감금을 견디면 부자가 된다면?

:

이선화, 고래는 낙하한다 - 참사에 대한 계층별 대응
양지숙, 핑키 프로미스 - 유명세
최주희, 옮겨심기 서비스 - 이버지와의 소통
원하릴, 홈.zip - 로봇과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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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해나

2026. 7. 9. 21:31

혼모노
두고 온 여름

혼모노가 더 나은 듯.^^

:

설공찬전
임진록
계축일기
장화홍련전

:

청소년문학이 좋다.
환상적이고 약간은 유치하면서도,
다름을 인정하고 상처를 보듬으며,
서로 연대하며 성장해나가는,
성장통의 서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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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과 이미 사이     _박노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 시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해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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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파 과기소설 단편 앤솔로지

이종산, 태양 공포: 도시 흡헐귀
정보라, 탈출기: 디지털 성범죄
허진희, 피터와 모: 외로움, 전쟁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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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현분관 신간코너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인데,
(물론 작가의 예전 책을 읽었어서)
흡인력 장난 아니다.

여우누이 설화를 미리 알고 읽으면 더 흥미진진.
원천 설화와 현대소설의 인물들이 오버랩되면서
두 서사를 비교하며 소설을 예측해보고 또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도 있다.
특히 소설에서는 "왜 여우가 가족들을 해칠까?"에 대한 여우 입장과 심리가 나온다.

2학기에 구비문학 수업을 듣게 되면
여우누이 설화를 연구해봐야지.^^

:

오랜만에 잘 만든 책 읽음.
이론과 현장이 조화된 책

88쪽: 스마트폰에 생각하는 힘을 빼앗긴 뇌
178쪽: 교사-학부모 간의 냉랭한 평화의 역설
198쪽: 소방 모델에서, 화재 예방 모델로
268쪽: 사회정서학습에서 마음 근력을 키우는 핵심 역량
- 자기 인식
- 자기 관리
- 사회적 인식
- 관계기술
- 책임 있는 의사결정
308쪽: 교사 소진. 교사가 살아야 학생이 산다.
345쪽: 결론. "거대한 시스템이 움직이기를 마냥 기다리기보다 서로에게 기댈 어깨가 되어" 주기.

:

청소년소설이라 별 기대 안했는데,
초능력, 재미
성장소설
차별과 조화
등 좋은 생각거리가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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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들 중

첫 번째 이야기: 입동
마지막 이야기: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읽다가 눈물로 다시 되새기게 되는
아마도 세월호 모티프인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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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수진 샘은 중학생용 추천 도서 목록을 만드는 분 중에서 최고 수준인 분이다.

송수진, 이민수 샘 이 두 분이 만드는 중학생 추천 도서는 한국의 문화 유산으로 지정해야 하는 수준이다. 좋은 책을 뽑는 건 어느 정도 공부하면 다 하지만, 좋은 책이면서 요즘 중학생들이 잘 읽는 책을 고르는 것은 보통 실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함께 여는 국어교육> 2026 봄호에 실린 글인데, 공개가 되어서 블로그에 올린다.
...

중학생에게 권하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추천 도서

송수진 의정부 회룡중 su-jinsong@hanmail.net

3월 초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는 순간 설레면서 두렵기도 하다. 과연 1년 동안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스럽다. 이때 학생들이 잘 읽는 책 목록을 준비해 두면 마음이 든든하다. 최근 몇 년간 학생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늘어나고 있고, 알고리즘으로 인해 특정 계층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가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수업 시간에 “장애인에게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왜 문제가 되냐?”고 물어보는 학생에게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도하지만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어른들의 말은 고리타분하고 뻔하다고 생각하는 중2 학생들과 논리적인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때때로 힘이 빠질 때가 많다. 이럴 때 학생들에게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는 힘을 길러주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책을 읽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직 독서에 익숙하지 않고 책 읽기는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기에 쉽고 재미있으면서 의미 있는 책을 권하는 편이다. 어릴 때 자기가 읽을 책을 직접 돈 주고 사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1학기에 인문 사회 도서 1권, 2학기에 청소년 소설 1권 총 2권을 사서 국어 시간에 같이 읽는다. 중학생은 수업 시간 45분 내내 책 읽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고 책을 자주 읽는 습관을 형성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수업 열기 10분 독서’를 한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면 자기가 읽을 책을 꺼내서 10분 동안 읽고 한 줄 정도 간단히 기록한 뒤 남은 시간 동안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것이다. 학생들과 10분 책 읽기 시간을 꾸준히 갖게 되면 변화가 서서히 일어난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을 때도 있지만 책을 읽는 행위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뿌듯할 때가 있다. 이때 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도서 목록이 중요하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직접 읽혀 보고 반응이 좋았던 책 위주로 목록을 만들었다.

인문 사회

원도(2019), 《경찰관속으로》, 이후진프레스.

우리 학교 옆 파출소에서 일하는 경찰들을 보며 순찰차를 타고 동네를 느긋하게 몇 바퀴 돌면서 가끔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편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경찰이 거짓 신고, 경찰서에 와서 커피를 타 달라는 어이없는 요청에서부터 가정폭력, 살인, 자살, 성폭력에 이르는 강력 사건까지 극과 극을 오가는 엄청난 일들을 처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찰로서 무력한 상황이나 일부 경찰의 부정부패를 전체로 확대 보도하는 언론 때문에 괴로워하는 경찰들의 진솔한 모습도 나온다. 학생들은 액션 영화에서 범인들을 멋있게 체포하는 경찰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접하기 힘든 허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원격 수업을 할 때 수업은 듣지 않으면서 이 책은 여러 번 읽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남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김가지(2025), 《저 청소일 하는데요?》, 책폴.

(만화)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들고 싶었던 작가는 청소로 돈을 벌고, 그림을 그리면서 자아를 실현한다. 가끔 학생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돈을 조금밖에 벌지 못할 것 같아서 포기하려고 한다’는 말을 한다. 그때 이 책의 작가 이야기를 해준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내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27살 여성이 청소를 하면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일어난 일을 담담하게 그려 놓은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고 조금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

김청연(2025),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동녘.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차별과 혐오의 말들에 대한 다양한 사례가 풍부하게 제시되어 있다. 아이들은 이렇게나 많은 차별 언어가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란다. 친구들 앞에서 말하기 수행평가를 마치고 돌아온 학생이 ‘말을 너무 많이 ‘절어서’ 속상했다’고 소감을 말하는데 순간 너무 아찔했다. 아이들은 말을 매끄럽게 하지 못하고 버벅거릴 경우 ‘말을 절다’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뭐가 이상한지 전혀 느끼지 못해서 마음에 걸렸다. 한 아이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되물었더니 그제서야 ‘신체가 불편한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최근 래퍼들이 ‘가사를 절다’는 표현을 사용해서 아이들도 별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 평소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언어를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보고 대체할 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라미(2019), 《나는 죽는 것보다 살찌는 게 더 무서웠다》, 마음의숲.

(만화) 예뻐지고 싶어 시작한 다이어트가 폭식증과 식이장애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진 날들의 경험담이 생생하게 나와 있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학생들은 외모에 관심이 무척 많고 외모를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사용하는 편이다. 이 책을 읽고 식이장애는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며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른 몸이 아름답다는 고정 관념을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해 보고 외모지상주의와 관련된 책을 더 읽어보면 좋겠다.

이종철(2019), 《까대기》, 보리.

(만화) 만화가를 꿈꾸며 택배 상하차 일을 해온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의 꿈인 만화 창작을 위해 남는 시간 동안 육체노동을 한다.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배달된 택배 뒤에 숨겨진 노동 현장의 혹독한 현실과 택배 노동자들의 고된 삶을 생생하게 알게 된다. 택배가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전화를 걸어 재촉하고 불만을 표현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 보고 좀 더 느긋하게 기다려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간혹 ‘나중에 까대기같이 힘든 노동을 하면서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업을 갖고 싶다.’는 글을 쓰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학생들이 있다면 후속 활동을 통해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알려주거나 열악한 노동 현장을 바꾸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같이 이야기해보았으면 한다.

서현숙(2021), 《소년을 읽다》, 사계절.

소년원에서 1년 동안 일주일에 2시간씩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수업 이야기가 나온다.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은 덩치가 크고 험상궂고 반항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눈빛이 순하고, 예의를 지킬 줄 알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다. 작가는 그들과 함께 책을 읽고 시를 외우며 곁에서 다정하게 삶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소년들을 편견 없이 대하고 반갑게 맞아 정성껏 대하였기에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하지만 작가 한 명의 노력으로 소년들의 삶이 달라질 수는 없다. 소년들이 사회로 돌아가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존중받는 삶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적 장치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면 좋겠다.

문지현(2017),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에게》, 뜨인돌.

잠시 쉬다가 공부하려고 했지만 결국 오늘은 피곤하니까 공부를 하지 않고 포기할 때가 있다. 아이들은 이런 모습을 잠시 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는 무기력이라고 말한다.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시작하려고 마음먹더라도 실제로는 딴짓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는 사람도 무기력한 것이다.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믿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중독되기 쉬운 사회관계망 서비스, 릴스, 유튜브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매년 학생들이 이 책을 골라 읽는 것을 보면 무기력에서 빠져나와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이 투영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씨리얼(2019), 《나의 가해자들에게》, 알에이치코리아.

2019년 4월 ‘씨리얼’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왔던 ‘왕따였던 어른들’이 책으로 나왔다. 왕따를 당했던 이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읽으며 학교 폭력은 학창 시절 그 순간만의 일이 아니라 어른이 된 후에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받으며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에서 학교 폭력 피해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따뜻한 포옹과 위로의 한마디라고 했다. 학생들은 꼭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그들을 위해 자신들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찾고 학교 폭력을 절대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을 친구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만 해도 학교폭력 예방 효과가 있다.

청소년 소설

조남주(2024), 《네가 되어 줄게》, 문학동네.

서로에 대한 오해가 최절정이던 순간 딸 강윤슬은 1993년 중학생 엄마의 삶으로, 엄마 최수일은 2023년 중학생 딸의 삶으로 딱 7일간 ‘너’의 삶을 살게 된다. 강윤슬은 1993년 중학생이 되어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교사에게 매를 맞고, 전교생 성적이 모두 공개되어 학생 인권이 억압받는 경험을 한다. 최수일은 2023년 중학생이 되어 딸의 친구들과 갑자기 아이돌 안무를 연습하고 축제 무대에서 공연을 하면서 딸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술술 책장을 넘기다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엄마와 딸의 삶에 점점 스며들게 된다. 사춘기 자녀와의 소통이 힘들었던 부모들에게도 강추한다!

부연정(2021), 《소리를 삼킨 소년》, 자음과모음.

아스퍼거 증후군과 함묵증으로 인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태의가 뜻밖의 살인 사건을 목격하며 알을 깨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이다.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면서 마지막에 태의가 변화된 모습이 벅찬 감동을 준다. 수업이 끝나면 가끔 사탕이나 젤리를 하나씩 주면서 친근함을 표현하던 씩씩한 아이가 가출을 하고 학교에 나와서도 엎드려 있을 때가 많았다. 다행히 2학기 때 학교에 나와 책을 꾸준히 읽는 모습이 참 기특했다. 이 아이가 ‘책을 보면서 운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눈물이 나서 너무 의외였다’고 쓴 걸 보면서 좋은 책을 읽기만 해도 아이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강리오(2019), 《어항에 사는 소년》, 소원나무.

열네 살 영유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집에 갇혀 지낸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힘든 삶에 엄마는 영유를 손찌검하고 방치한다. 영유는 어항에 키우는 물고기를 친구로 여기며 지낸다. 영유 앞에 나타난 마음이 따뜻한 현재와 의리 있는 중국집 배달일을 하는 형 덕분에 영유는 용기를 내서 집을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영유는 보호자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자신을 두들겨 팬 부모가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학생들은 영유가 과연 엄마가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말아야 하는지 대화를 나누면서 아동 학대에 대응하는 사회 제도가 얼마나 허술한지 깨닫게 된다.

추정경(2022), 《열다섯에 곰이라니》, 다산책방.

저마다의 고민을 지닌 십 대 아이들이 갑작스럽게 동물로 변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이다. 상상력과 기발함이 돋보이는 설정이 재밌고 학생들이 대부분 즐겁게 읽는다. 중학교 교실에서 생활하다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행동을 하며 대화가 되지 않는 아이들이 동물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신기하게도 동물 같던 아이들이 철이 들고 어른이 돼서 자기 몫을 잘하고 있는 걸 보면 위안이 많이 된다. 소설 속에서 나무늘보로 변했던 아이가 사람이었을 때는 느리게 행동해서 구박받고 이해받지 못했는데 동물로 변한 이후 오히려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사회가 느린 아이들도 넉넉히 품어주는 여유가 없다는 점이 씁쓸했다.

황영미(2019),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문학동네.

누구라도 겪었을 것 같은, 지금 어딘가에서도 펼쳐지고 있는 중2 교실 속 이야기다. 다현은 ‘다섯 손가락’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속마음을 숨긴 채 친구들에게 억지로 맞춰 주며 지낸다. 하지만 본성을 거스르며 억지로 함께하는 건 오래 갈 수 없는 법이다. 다현은 다섯 손가락 친구들과 헤어지고 속 깊은 은유와 친해지며 있는 그대로의 본인 모습을 드러내면서 살기로 다짐한다. 교실에서는 어제의 단짝 친구가 오늘의 배신자가 되고, 무리 지어 다니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누군가를 따돌리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타인의 시선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나답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면서 당당하고 단단하게 살아가길 힘껏 응원해 본다.

정수윤(2024), 《파도의 아이들》, 돌베개.

탈북 청소년 세 명의 주인공 ‘설’, ‘광민’, ‘여름’이 북한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기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13년 동안 100여 명에 달하는 실제 탈북 청소년들을 인터뷰한 작가의 성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로, 이들이 마주해야 했던 고난과 좌절, 이별의 경험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오로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찾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선택한 아이들의 절실함이 가슴 먹먹하게 다가온다. 끝끝내 바다를 찾아낸 그들의 삶이 현재 남한에서 살아가는 청소년의 삶과 다르지 않기에 주인공 세 명의 삶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파도를 피하지 않고 용기 있게 다가가는 세 명의 아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따뜻한 응원의 손길이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희영(2023), 《소금 아이》, 돌베개.

홀로 외떨어진 섬처럼 자란 이수에게 세상은 이제까지 기댈 어깨를 내어 주지 않았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할머니가 가족이 되어 주었다. 이수는 학교에서 기윤에게 학교 폭력을 당하지만 맞대응하지 않고 피하면서 지낸다. 이런 이수에게 부모에게 버림받아 선인장처럼 뾰족하고 단단해진 문제아 세아가 다가온다. 할머니의 치매로 인해 과거의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 이수는 이제는 피하지 않고 세상에 부딪혀 나가기로 결심한다. 이수 곁에는 옳지 않은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 든든한 세아가 있기 때문이다. 각자 저마다 아픔을 지닌 인물들이 서로를 기꺼이 돌보며 울타리가 되어 주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큰 울림을 남긴다.

백온유(2020), 《유원》, 창비.

십여 년 전 비극적인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열여덟 살 주인공 유원의 이야기를 그렸다. 화재 사건에서 자신을 살리고 세상을 떠난 언니, 11층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자신을 받아 내면서 몸도 삶도 망가져 버린 아저씨, 외로운 나날 가운데에서 훌쩍 다가온 친구 수현 등 관계 속에서 겪는 내밀한 상처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유원은 힘들게 살아남았기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부채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하지만 솔직 발랄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수현의 모습을 보며 유원도 아저씨에게 방송 출연을 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책임감에 얽매여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과연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1년이 지나고 아이들과 마무리를 할 시간이 되면 과연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떠올릴 때가 있다. 아이들이 나를 만나 책을 사는 기쁨을 알게 되고 더 좋은 책을 알아보는 밝은 눈을 갖게 될 때 보람을 느낀다. 가끔 멋진 어른이 되어 나타난 제자들이 중학교 때 책을 읽었던 경험이 씨앗이 되어 지금도 책을 읽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고 할 때가 있다.

‘요즘 유튜브 영상과 숏츠, 릴스에 깊이 빠져 있는 제 모습을 봤을 때 너무 의미 없어 보여서 독서를 시작했어요. 쌤이 알려주신 ‘하루에 한 쪽, 한 줄만 읽어도 된다. 그렇게 읽다가 다 읽게 되는 거’라고 알려주신 독서 방법 덕분에 거창하게 시작 안 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되어서 쉽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해요. ^^’

며칠 전 제자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으니 마음이 참 따뜻했다. 그 당시 내가 했던 말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도 않는데 제자는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않고 있었다. 이 맛에 교사를 하고 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서 같이 책을 읽자고 이야기하나 보다. 책 읽기가 문득 삶이 쓸쓸하고 외로울 때 좋은 벗이 될 것이라고 믿어 본다.

: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 씨 이야기.
트라우마에 대한 만화.

설명을 내가 쓰기 힘들어서
교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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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대전에서 본 일이다.

늙은 박사 하나가 산단(産團)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열 장 짜리 연구계획서를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계획서로 혹 주관기관 신청이 가능한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산단 직원의 입을 쳐다본다. 산단 직원은 박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계획서를 슥 넘겨보고는 '좋소' 하고 내어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계획서를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자꾸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얼마를 가더니, 이번에는 연구재단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을 꾸물럭거리다가 그 계획서를 내놓으며

"이것이 정말 예비선정된 것이오니까?"

하고 묻는다. 연구재단 직원은 심드렁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계획서, AI로 작성한 거 아니지?"

박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럼 남의 것을 훔쳤단 말인가?"

"누가 유사도검사에 걸릴 짓을 한답니까. 걸리면 제재는 안 받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박사는 손을 내밀었다. 연구재단 직원은 웃으면서 '좋소' 하고 던져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 흘끔 돌아보며 얼마를 허덕이고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핸드폰을 꺼내서 홈페이지에 적힌 '예비선정' 넉 자가 진짜인가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다. 거친 손바닥이 액정 위를 스와이핑할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핸드폰을 손바닥 위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심사소견에 심취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간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느 심사위원이 그렇게 많이 칭찬해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핸드폰을 주머니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재단에 투서하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켰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베낀 것이 아닙니다. AI로 돌린 것도 아닙니다. 저 같은 가난뱅이 박사가 유료 API를 어떻게 돌립니까? 전산자원 지원 한 번 받아본 적도 없습니다. KCI 학술지 한 편 게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편 한 편 쌓은 업적으로 몇 개의 계획서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계획서로 신진연구인력, 저술지원, 학술연구교수 A, B 등을 몇 번이나 지원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해 반복하여 겨우 이 귀한 학술연구교수 A-2 유형 예비선정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판정 받느라고 넉 달짜리 강의도 포기했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학술연구교수가 되려 한단 말이오. 그 사업으로 무엇을 하려오. 교수 임용이라도 되려 하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저, 월급 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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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라 월드

2026. 5. 4. 23:21

처단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읽었는데 기록 안해둬서 이제야.^^

근데 파견 기간 동안 책 너무 못 읽었다...ㅜㅠ큐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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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인 때문에 정기권 구입해봤는데,
1주일만에 환불해버림.

가장 큰 단점은
정기권으로는 입석과 자유석만 가능하다는 점.;;;
근데 자유석 체크인은 오후에는 18시 이후만 가능.
결국 좌석지정을 해야하는데
추가요금이 들고,
왜 그런지 1호차만 타야하고,
왜왜왜 그런지 어떤 때는 좌석지정도 불가능함.
피곤해서 편히 쉬거나 공부하며 가고 싶은데.ㅜㅠ
눈치 보며 신경 곤두서야 함.
수수료 내고 말지, 환불해버렸다.

KTX 정기권 사실 분들은
위와 같은 점 미리 참고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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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랑하는 SF 작가 김초엽!
게다가 장편소설(長이 아니고 掌. 매우 짧은 소설).
금방 읽히는데 의미와 상상력 크다.
특히 외계, 타자, 접촉이라는 키워드.
수업용 강추!

단편 제목:

선인장 끌어안기
행성어 서점
소망 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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