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쪽: 시험의 형식과 요구사항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잘못된 영향을 미친다.
231~233쪽: 고등학교 공교육의 역할
337쪽
342쪽: 순수한 의도는 종종 구조 속에서 왜곡됩니다. 혹은 폐해를 숨기는 가림막으로 기능합니다. 달리 말하면 명백한 악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선의에 의해서도, 이상과 헌신에 의해서도 사람은 실망과 실패를 겪습니다. 또한 이 실패는 물리적이고 타산적인 이유로만이 아니라 자신이 처음부터 불행의 관계망 속에 있었음을 발견할 때도 포착됩니다.
376쪽: '수능이 망가졌으니 수시를 확대하자'거나 '수능 같은 객관식 시험은 창발적 사고를 방해하니 학교 일선에서 논.서술형 평가의 비중을 늘리자'는 진단이 무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구호에 기반한 제안은 현실에 구현되는 순간 다양한 여건과 참여자들의 역량에 따라 원래 기대와는 다른 형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교육 혁신을 논할 때 이론에 바탕한 도입 취지와 기대 효과만을 논거로 삼는 것은 설계도면만 보고 완공된 건물을 상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반을 조사하고, 땅의 경계를 측량하고 인부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건설 과정을 감독하는 노력 없이 설계도면만을 넘겨준 다음 건물이 알아서 완성되리라 믿는 태도는 태만이자 무책임일 수밖에 없습니다.
403~404쪽: 개인의 열망과 선의가 결함 있는 구조 속에서 왜곡되며, 미시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거시적으로는 그 결함을 강화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말하든 모자람이 없을 듯합니다. (중략)
따라서 '교사가 평가권을 남용할 경우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모범 사례를 보아라. 열심히 하는 교사들은 잘하지 않느냐?'라고 대답하는 것은 외면이자 합리화에 가깝습니다. 훌륭한 공적 시스템이라면 교사가 의욕이 없더라도, 심지어 악의를 품더라도 학생들을 그 해악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454~455쪽:
·사교육을 통한 사적 구제가 허용될 수 있는 분야와, 반드시 공공이 책임져야만 하는 분야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 훌륭한 교육이란 무엇이며, 그 목적과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 학생의 발달에 무엇이 필요한가? 학생의 역량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 학교의 운영에 무엇이 필요한가? 학교의 역량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각각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그 역할은 무엇인가?
· 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 뚜렷한 진로를 심어주는 곳이어야 하는가, 혹은 단순히 공동교양을 갖춘 시민을 육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가?
·대학은 학생을 잘 선별하는 것에 치중해야 하는가, 혹은 '어떤 학생이 들어오더라도 해당 학문 분과에 대한 전문성과 흥미를 배양하도록 지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하는가?
· 대학, 연구자, 고교, 교사는 학생의 발달과정과 진로 선택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야 하고, 어떤 영역을 학생의 자율에 맡겨 두어야 하는가? 이를 위해서는 무엇을 평가하고, 무엇을 평가와는 무관한 영역으로 두어야 하는가?
· 납득할 만한 차이와 부당한 차이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이 기준을 뒷받침하는 것은 어떤 가치들인가?
· 대한민국 사회는 어떠한 형태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교육이 필요한가?
·이 모든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 무엇을 안겨다주는가?
469쪽: 악순환의 굴레를 끊어야 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단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이에 기반해 제도적 변화를 이루어나가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학생들 스스로가 입시를 '한정된 자리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대학 공부의 준비 단계이자 실질적인 지식을 배우는 과정'으로 여길 수 있게 해야만 합니다. 평가. 경쟁 방식을 정상화함으로써 학생들이 "나는 실제로 중요한 내용 을 배우고 있구나. 내가 노력해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학문적 이해도 그만큼 깊어지겠구나"라고 느낄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78쪽: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485쪽: 무기력하거나 타성에 젖은 교사들이 실제로 존재하며 이들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학생들은 이러한 교사에게서 배운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혁신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생존자 편향을 경계하고 최악의 상황을 그릴 필요가 있는 셈입니다. 교육 자원 모들화를 제안한 것도 이와 동일한 맥락입니다. 개별 학급의 특성을 존중하고 교사의 재량권이 보장되는 수업을 추구하되, 의욕이 전무한 교사라도 최소한도의 대비가 가능하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합니다.
488쪽: 이상은 외 [OECD 교육 2030 참여 연구: 역량의 교육정책적 적용 과제 탐색」, 한국 교육개발원 2018,134면. 강조는 원문.
교과 간에 뭔가 연계와 통합을 통해서 뭔가 교수학습계획을 세우려고 하는 게 꼭 필요하거든요. 근데 사실 우리가 각 교과간에 그런 협의를 전혀 안 하잖아요. 교육과정 개발할 때도 전혀 안 해요.
그래프나 통계는 그렇게 하려고 했죠. 통계 같은 경우에 다른 교과에서도 많이 쓰고, 그래프도 신문 보면 많이 나오고 그러니까 그런 것을 연계해서 약간 비형식적인 그래프를 이해하는 방법을 애들한테 가르쳐주려고 했죠.(.) 그런데 그런 거 하나 넣기가 너무 힘들죠.
493쪽: 대등한 참여
그런데 통계에만 집중하면 놓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실태 파악에 필요한 정보는 정량적인 데이터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의 목소리'로 대표되는 정성적 데이터일 수도 있으니까요.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당사자의 범주는 '논의에 참여할 만큼 열정적인 교사들' 이상으로 넓어져야 합니다. 열정적이지 않은 교사들은 물론이고 다양한 유형의 학생(모범생, 평범한 학생, 등교하자마자 잠드는 학생.....)까지가 포함되어야 하지요. 그주메서는 무엇보다도 학생이 핵심이어야 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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