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여긴 놀러가는 데는 아니지만...

꼭 다시 가고 싶다.
: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너를 다시 만났었지
신문을 사려 돌아섰을 때
너의 모습을 보았지
발 디딜 틈 없는 그 곳에서
너의 이름을 부를 때
넌 놀란 모습으로 음
너에게 다가가려 할 때에
난 누군가의 발을 밟았기에
커다란 웃음으로
미안하다 말해야 했었지
살아가는 얘기 변한 이야기
지루했던 날씨 이야기
밀려드는 추억으로
우린 쉽게 지쳐 갔지
이렇듯 더디던 시간이
우리를 스쳐 지난 지금
너는 두 아이의 엄마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지
나의 생활을 물었을 때
나는 허탈한 어깨 짓으로
어딘가 있을 무언가를
아직 찾고 있다 했지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엔
빛나는 열매를 보여준다 했지
우리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그날의 노래는
우리 귀에 아직 아련한데

가끔씩 너를 생각한다고
들려주고 싶었지만
짧은 인사만을 남겨둔채
너는 내려야 했었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너의 모습이 사라질 때
오래 전 그 날 처럼 내 마음엔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엔
빛나는 열매를 보여준다 했지
우리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그날의 노래는
우리 귀에 아직 아련한데
라라 라라라 라라 라라라......
:
한 번만 더 얘기해 주세요
너무나도 설레는 꿈같은 얘기들
공부는 내일 더 잘할께요
언제나 들어도
처음 같은 첫사랑
나도 하고 싶어요
지금 우리 마음이
꼭 그렇잖아요 얘기해 주세요

밖에 나가요
넓은 상상만으로
모든 걸 볼 수 있게
뛰어 나가요
웃는 저 하늘과
열린 내 마음까지도

책 속엔 없는 것도 많아요
선생님 사랑도 친구들의 우정도
공식대로 풀 순 없는 거죠
단어처럼 외워서 무슨 기계처럼
계속은 더 안되요
조금만 쉬게 해요
지금 우리 맘이
너무 힘들잖아요

책을 덮어요
넓은 상상만으로
모든 걸 볼 수 있게
뛰어 나가요
웃는 저 하늘과
열린 내 마음이 먼저
밖에 나가요
넓은 상상만으로
모든 걸 볼 수 있게
뛰어 나가요
웃는 저 하늘과
열린 내 마음까지

나만의 세상이 또 있어요
누구도 알 수 없는
모두가 똑같은 높이로
자유롭게 날아가

*   *
:

원령공주

2009. 10. 7. 20:08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정말,
작품이다.

그 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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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소리 http://www.badaksori.com/

영욱이형 통해서 우연히 듣게 된 창작판소리극 공연.
"제목이 뭐예요?"
"어 뭐... '닭들... 날다'였던가?"
이 말을 듣고 영화 '치킨 런'을 떠올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내용보다는 창작판소리라는 것에 끌려서,
그리고 형이 "이분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라고 하는 추천에 이끌려서 공연을 보러 갔다.

대학로 정美소라는 공연장에 들어서자 마자, "1분 후 공연 시작합니다~"하는 소리. 다행이다, 하며 자리를 찾아들어갔다. 공연 전 설명부터 판소리로 시작되는 게 눈길을 끌었다. 그냥 건조하게 말하는 것보다는, 가락에 실어 말하는 것('아니리'라고 할 수 있겠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새삼 깨달았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전반부에는 닭장 속에 갇힌 닭들이 금지된 꿈을 꾸다가 고생을 겪고 탈출하는 내용이었다. 거의 '치킨 런'을 연상시키는 내용. 그렇지만 사냥개, 그리고 닭반장의 말들이 현대의 우리 사회를 풍자적으로 반영한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야기 전체에 깔려 있는 해학적인 요소들이 같은 내용이라도 좀더 판소리적인 분위기로 바꾸고 있었다. 닭할아버지가 닭 조상에 대해 설명할 때, '닭싸움'을 가져와서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싸움도 잘 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이 이야기의 상상력과 변용 능력이 뛰어나다는 단초를 보여주고 있었다.
창의 가사도 새로웠다. 분명 가락은 판소리 가락인데, 가사 내용이나 어투는 현대적이었다. 특히 꼬끼가 꼬비를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는, 가사만 들어보면 최신 가요의 이별 가사와 다르지 않았다. 전통적 음에 현대적 말. 약간은 어색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새로운 어울림. '어긋남의 합창'이라고 할까?

3장의 '트럭 운전사의 증언'에서는 해학적 아름다움이 매우 뛰어나게 드러났다. 역시 판소리는 이야기도 그렇지만 소리꾼의 재치와 능청스러움, 애드립이 빛을 발하는 장르이다. 그리고 혼자 하는 판소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연극처럼 움직이는 판소리극이다보니, 몸으로 표현하는 것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닭들의 꿈, 날다'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이야기라고 주저없이 말하겠다. '닭들의 꿈, 날다'의 이야기는 깊이가 있지만 가라앉지는 않았고, 그저 웃기는 듯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며, 새로움 속에서 원전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이야기의 깊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철학과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가벼운 듯한 개그도 그 속에 뼈를 감추고 있으면, 자지러지게 웃고 나서 묵직한 깊이가 느껴진다.
'닭들의 꿈, 날다'는 현대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들을 담고 있다. 통제된 사회, 꿈을 잃은 사회에 대한 건 물론이거니와, 비무장지대 안의 폭력과 파괴(지뢰밭), 분단으로 인한 이산의 아픔까지 드러낸다. 심지어 조류독감의 대유행과 그에 따른 닭들의 집단 살처분은, 마른 기침 한 번 해도 "당신 신종 플루 아냐?"라고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는 작금의 세태까지 풍자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깊이가 있는 작품은, 자칫 무거워질 수가 있다. 자신의 깊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없이 진지하게만 흘러가다가 진지함을 강요하게 되는 작품은 부지기수다. 잠수함이 내용물을 많이 실을 수록 그만큼의 공기도 많이 실어야 하는 것처럼, 문학작품도 깊이 가라앉을수록 부력을 일으킬 산소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닭들의 꿈, 날다'는 그 산소를 해학에서 찾았다. 특히 판소리 특유의 해학미는 작품 전반을 감돌며, 관객들이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도록 만들었다.


'닭들의 꿈, 날다'가 더욱 대단한 것은, 웃음이 그저 해학에 그치지 않고 창조적 상상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닭들의 꿈, 날다'에는 그냥 분위기 반전을 위한 웃음이 아니라, 닭, 독수리, 할머니 등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상상력이 작동하고 있다. '꼬끼'가 처음에 자신의 꿈을 밝히면서 "성대모사요!"라고 했을 때 그 엉뚱함에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성대모사가 작품 후반에서 서로 만날 수 없는 쌍둥이 할머니의 목소리를 전달해줄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변화했을 때, 웃음은 웃음을 넘어 희망으로 부상한다. 그 희망은 할머니의 죽음이 주는 슬픔까지도 새로운 원동력으로 바꿀 수 있는 마법이다. 할머니가 죽고 나서 슬퍼하고 있는 멍구(강아지)에게, 꼬끼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이미 내 안에 들어 있어!! 우리가 그걸 전해주자!!!"라고 말하며 슬픔을 극복하게 만들지 않는가?(대사가 정확한지는...;; 이래서 대본이 필요해요ㅜㅠ)

나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상상력은 '닭수리'였다. 다리 없는 독수리와 날개 없는 닭이 함께 하늘을 난다니! 날개 있는 독수리와 다리 있는 닭이 함께 하늘을 난다니!!!
'닭들의 꿈, 날다'는 '없는'이 아니라 '있는'에 주목했다. '없는'에 주목하면 장애가 되지만, '있는'에 주목하면 가능성이 된다. 말로 하면 쉬워 보이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이런 상상을 한다는 것은, 정말 UFO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상상력은 절망으로 가득찬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 다들 자신의 현실 속에서 부러지고 빼앗기고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여 절망한다. 솔직히 나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저 눈물만 흘리고 만다.
그러나 상상하면, '있는'는 주목하면,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주류가 아무리 강력하고 폭력적이라도, 결코 빼앗을 수 없는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를 들면... 희망, 사랑, 상상력, 의지,,, 이런 것들......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을까?

그런 엄청난 상상력이 원천이었는지, '닭들의 꿈, 날다'에는 심금을 울리는 대사가 많다. 생각나는 대로만 적어보면,

"비무장지대는 완전무장지대야."
"새들이 많다고 해서 새들의 천국인 건 아냐. 그리고 인간들에게도, 천국은 아닌 것 같아."
"우린 살아온 공간, 살아온 과정은 다르지만, 살아온 흔적, 살아온 슬픔은 같아."
"할머니의 목소리는 이미 내 안에 들어 있어!"


신기한 것은 그렇게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닭들의 꿈, 날다'가, 받아들이기 힘들다거나 버겁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 상상력은 충격을 주고, 충격을 이질감을 준다. 그 이질감이 왜 '닭들의 꿈, 날다'에는 거의 없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변용, 다른 말로 패러디 때문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닭들의 꿈, 날다'에는 다양한 패러디가 등장한다. 처음에 UFO를 발견한 데에서는 패닉의 <UFO>를 떠올렸다(패닉의 <UFO> 역시 상상력이 대단한 노래이다. 짓밟히고 죽어간 사람들이 UFO를 타고 다시 되돌아온다는 발상.). 조류독감 때문에 흰 옷을 입은 방역대원들이 닭들을 집단폐사시킬 때는 영화 <괴물>이 연상되었다. 새다리골절전문치료사인 할머니, 새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할머니는 알다시피 <흥보가>를 변용한 것이다. 그 외에도 철조망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새, 만나기 직전에 세상을 떠나는 이산가족들(소설 <숨쉬는 영정>)은 모두 한국 문학 작품 속에서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던 모티브들이다. 그렇게 익숙한 원전들이 기반이 되어 '닭들의 꿈, 날다'가 만들어졌기에, 상상력이 거리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닭들의 꿈, 날다'는 생각하면 할수록 더 쓸 말이 많아지는,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작품이다. 장르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한가지 정말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연 날짜가 너무 짧았다는 것!

앞으로도 '바닥소리' 소리꾼들, 그리고 '닭들의 꿈, 날다'를 만드신 여러 재주꾼들의 힘으로,
이런 명작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나누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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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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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난 니가 싫어졌어 우리 이만 헤어져
다른 여자가 생겼어 너보다 훨씬 좋은
실망하지는 마 나 원래 이런 놈이니까
제발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

Rap> 그래 이래야 했어 이래야만 했어 거짓말을 했어
내가 내가 결국 너를 울리고 말았어
하지만 내가 이래야만 나를 향한
너의 마음을 모두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 맘을 내 결정을 어쩔 수 없음을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니가 날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너무나도 잘 알기에
어쩔 수 없어 널 속일게 미안해 널 울릴게

* 잘 가 (가지 마) 행복해 (떠나지 마)
나를 잊어 줘 잊고 살아가 줘 (나를 잊지 마)
나는 (그래 나는) 괜찮아 (아프잖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떠나가 (제발 가지 마) *

왜 자꾸 날 따라 와 싫다고 했잖아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몇 번 말했잖아
너 자꾸 이러면 나 이제 정말 화낼 거야
제발 너도 다른 사랑 찾아

Rap> 왜 자꾸 이러니 왜 자꾸 날 힘들게 하니
니가 자꾸 이러면 내가 널 떠나 보내기가 힘들잖니
내가 어디가 좋니 이렇게 매일 고생만 시키잖니
그리고 너 정도면 훨씬 좋은 남자 얼마든지
사귈 수 있잖니 (싫어 싫어)
정신 차려 바보야 정신 차려 제발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제 니가 정말 싫어
그러니 제발 돌아가 제발 저리 가
난 니가 싫어 니가 정말 싫어

* ... * × 2

잘 가  행복해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줘 (나를 잊으면 안돼)
나는 (그래 나는) 괜찮아 (아프잖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떠나가 -

 
                                                                                                                         

이별의 반어적 표현을 잘 드러낸 시...
김소월 <진달래꽃>과 같이 수업하며 비교하면 좋을 듯.
특히 (     )안 말의 기능.
<진달래꽃>에 (       )안 말 써넣기.
:
여름방학 동안에 영원히 볼 수 없는 니가 되었지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어 니가 떠났던 건
눈물은 소용없다 사람들 말했었지
그래 다시는 울지 않을게
내 곁에 있다 생각을 할거야

지난 수많았던 기억속에 너를 떠올릴게
기억처럼 니가 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

* 슬픔도 기쁨도 지나치지 말라던 너의 말
영원히 기억할거야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때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 줘 이제는
편안히 숨쉴수 있는 곳으로 너 가도 돼 내가 지켜줄 테니
걱정마 난 남아 있을거야
영원히 니가 바란 그모습 그대로 *
 

너 가기 전엔 할수 없었던
네게 정말 말해주고 싶던 것들을
이젠 얘기 할게

* ... *
:

[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살가운 우리 땅이름 ‘너더리’와 ‘너섬’

[한국경제] 2008년 12월 19일(금) 오전 11:08 가  가| 이메일| 프린트 


1970년 7월 7일은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 날이다.

국토의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잇는 길이 428㎞의 대역사였다.

이로 인해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산업화시대의 막을 올렸다.

경제 대동맥이랄 수 있는 이 경부고속도로를 서울에서 빠져 나가면서 처음 만나는 분기점이 판교 나들목이다.

행정관할이 성남시 분당구인 판교는 지금 판교~구리 고속도로,서울외곽순환도로와 만나고 판교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교통요충지로 변했지만 당시만 해도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에 속해 있던 이름 없는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판교IC는 경부고속도로의 탄생과 더불어 그렇게 '판교'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말 연구자들 사이에선 이 판교란 이름을 두고 오래 전부터 논란이 있어 왔다.

본래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잘못 바꾼 것이라는 게 요지이다.

이곳은 원래 조상 대대로 '널다리' '너더리'로 부르던 곳이었다.

그러던 것을 일제 때 행정구역 정비를 하면서 '널빤지 판(板),다리 교(橋)'를 취해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널다리' 또는 '너더리'의 '다리'나 '더리'는 다리(橋)와는 전혀 상관없는,'들(野)'이 변형된 말이라는 점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말과 땅이름에 관심을 두고 전국 각지의 지명을 연구해온 배우리 선생은 "널다리나 너더리의 '다리' '더리'는 원래 '들'을 뜻하며 '다리(橋)'는 아니었다. '널다리'에서의 '널'도 널빤지를 뜻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넓음(廣)'의 뜻을 담는 말이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다만 성남시 분당구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와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는데,판교 지명의 유래를 마을 앞을 지나는 개울(운중천)에 판자로 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판교는 본래 '넓은 들'을 뜻하는 '널다리',또는 그것이 변해 '너더리' 마을로 불리던 곳이라는 점이다.

우리 고유의 감칠맛 나는 땅이름을 한자 지명에 밀려 잃어버린 꼴이 되고 만 셈이다.

우리가 본래 갖고 있던 살갑고 정겨운 지명이 한자 이름의 그늘 속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곳으로는 서울의 여의도(汝矣島)도 대표적이다.

우리가 너무도 흔히,아무 의심 없이 불러온 '여의도'이지만 사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말은 조선시대에 나의주(羅衣洲) 또는 잉화도(仍火島)란 또 다른 이름과 함께 비교적 일찍부터 한자어로 불리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이런 한자말이 모두 본래 고유의 땅이름을 소리나 뜻을 빌려 옮겨 적으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곳은 예부터 한강 가운데에 '너른 벌이 있는 섬'이란 뜻에서 '너벌섬'으로 불렸다.

너벌섬은 더 줄어 '너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배우리 선생이나 국립지리원의 <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여기서 '너'와 비슷한 소리를 빌려 나(羅)를 취하고,'벌'이란 소리를 살리기 위해 옷의 옛말인 '벌'을 뜻하는 한자 '의(衣)'를 취해 '나의주'라 했다고 한다.

여의동 주민센터 홈페이지에서는 특히 '-주(洲)' 표기에 관해 이곳이 본래 고립된 섬이 아닌 현재의 영등포동에 이어진 삼각주였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한다.

지금의 '여의도(汝矣島)'라는 이름도 '너벌섬'에서 '너의섬'으로 바뀌고,다시 '너'의 뜻을 빌린 여(汝)와 소리를 빌려 표기한 의(矣)에 섬 도(島) 자를 붙여 만든 것이다.

'잉화도'의 잉(仍)은 우리말의 '너,나'를 적기 위한 한자 표기이고,'화(火)'는 곧 '불'이므로 비슷한 소리인 '벌'을 나타내기 위한 표기로 풀이된다.

어쨌거나 한자가 득세하던 시절에 우리 고유어를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소리와 뜻을 빌려 옮긴 희한한 말이 '여의도'인 것이다.

여의도나 판교란 지명을 지금 와서 새삼스레 바꿀 수도,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겠지만, 적어도 뜻도 모를 한자말보다는 우리 본래 말인 '너벌섬'이나 '너섬' '너더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더 이상 잊혀져가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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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연히 잡지 「풋,」 읽으면서
春川의 고유어 지명이 '봄내'라는 것을 들었다.

봄내,
봄내





발음할 수록 너어무 예쁘다.
이런 지명들이 왜 춘천이라는, 딱딱하고 흐린 한문으로 바뀐 걸까?
(춘천...하면 무언가 밝지 않고 흐리고 희뿌옇고 그늘지다. 춘천호의 이미지 때문에? 아니면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 때문에?)



생각난 김에 고유어로 된 지명 찾아봤다.
혹시나 알고 있는 고유어 지명 있으면,
올려주시길.
(가능하다면 지금 지명이랑 비교해서^^)

                                                                                                     

벌말(현재는 평촌)
빛고을(현재는 광주)


지하철역명 : 보라매(7), 버티고개(6), 장승배기(7), 굽은다리(5), 독바위(6), 선바위(4), 광나루역(5), 돌곶이(6), 당고개(4)
:
09.09.24 10시 김창완의 명품콘서트에서
김동욱과 타루가 함께 나왔다.
둘 다 참 노래가 좋고,
둘 다 참 가난하고,
둘 다 참 맑았다.

---------------------------------------------------------

Hello again
How do you feel
덜컹거리던 우리 둘 사이
얼룩진 기억 이제 그만
깨끗이 지워버리고
맑은 햇살 아래 다시
시작하는 기분 우리
내게 먼저 너 그 손 내밀어 주겠니

Shall we dance once again
지난 기억 잊고서
오늘 이 밤을 기억해
이 마음 변치 않도록

사랑했다 헤어지는
세상의 많은 연인들
미안했다 그 한마디
깨끗이 사라질 오해
괜한 고집 괜한 투정
이상하게 그럴 때면
내게 먼저 너 그 손 내밀어 주겠니

Shall we dance once again
잡은 두 손 놓지마
밤이 새도록 노래해
서로의 눈을 맞대어
Shall we dance don't stop playing
두 번 다시 도망치지 마
지금 내리는 이 비에
새 옷을 적셔버려도
곧 마를 테니까
어디에서도 언제까지나

Hello again 다시 안녕
말끔한 새 옷을 입고서
얼룩진 기억 이젠 그만
깨끗이 지워버리고
맑은 햇살 아래 다시
시작하는 기분 우리
내게 먼저 너 그 손 내밀어 주겠니

Shall we dance once again
지난 기억 잊고서
오늘 이 밤을 기억해
이 마음 변치 않도록
Shall we dance don't stop playing
두 번 다시 도망치지 마
밤이 새도록 노래해
서로의 눈을 맞대어
변하지 않도록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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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

2009. 9. 25. 18:28
한 아이가 보내준 향기가 있었다.
그리 고급스럽진 않은, 딱 그 아이가 보낼 만한 향수. 그 때 참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1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그동안 향기는 봉투에 곱게 싸여 진주에서 수원까지 왔다. 문득 생각이 나 오랜만에 열어 보았을 때... 향기는 조금은 옅어졌지만 숙성했고, 다른 편지에까지 묻어나/번져/물들어 있었다.
농도를 조금 낮추어,
주위를 멀리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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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 2001년 11월 20일 화요일 오전 8:47:50
아마 수업시간 발표 준비문 같음;;


판타지도 문학인가?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가장 즐겨 읽히고 있는 장르가 바로 판타지 소설일 것이다. 이우혁의 『퇴마록』,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 등 훌륭한^^; 작품들이 나오고, 이제는 서점에서 한 코너가 판타지 소설로 채워져 있을 정도로 양에서 결코 다른 장르와 뒤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한편으로 판타지 문학을 문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재미만 추구하고 시류에만 영합하는 판타지는 결코 격문학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여기서 우리는 판타지의 문학적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봄으로써 지금 범람하고 있는 판타지의 홍수에 제대로 물길을 터 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판타지가 재미만 다룬다는 명제에 대해 가부를 가려보자. 물론 판타지 소설 중에는 흥미적 요소만을 담고 있는 작품도 몇 개 있다. 하지만 다수의 판타지 소설들은 각자 자신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판타지는 장편이 대부분이므로 여러 가지 상황에서 제시되는 삶의 진리를 총체적으로 보여 줄 수도 있다. (특히 이영도의 『퓨처워커』)
혹자는 판타지가 허구 중의 허구,
있을 수 없는 허구라는 점을 지적하며 거기에서 어떻게 진실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판타지는 완전한 허구가 아니다. 판타지는 배경, 인물, 사건에서 현실에 없는 것들을 쓸 수 있다는 것이지, 완전히 현실에서 동떨어져 현실적 삶의 법칙을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판타지의 세계에서는 작가의 창조적 역량이 최대한 발현되므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진리를 전달하기에 더 나을지도 모른다. 특히 요즘 90년대 작가들 중에서 백민석 같은 작가는 판타지적 단편소설을 써 내기도 한다. 『캘리포니아 나무개』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어떤 박물관에 나무 위에 사는 개가 있다는 것을 시작을 그 개에 대한 이미지들을 풀어내고 있다. 사실 대중적 판타지 소설보다 더 황당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 이런 본격작가들의 판타지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판타지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판타지는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름대로 삶에 대한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꽤 많이 있다.

그리고 판타지가 가지고 있는 또하나의 장점은, 사람들의 소망을 실제로 구현해 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법이나 환상적 세계에 대한 동경을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다.(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그런 불가능함을 판타지는 과감히 깨어버린다. 그럼으로써 판타지는 독자의 소망을 실현시켜준다.

(요건 시간 남으면 말하기..) 판타지는 그 나라 신화를 대중화하는 데 충분한 기여를 한다. 서양의 예: 애니매이션 헤라클레스, 북구 신화를 기본으로 한 유럽형 판타지물들, 그 외 다수.

※굵은 글자: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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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01.6.24
반도문학회에서



                                    나의 문학



나는 ‘문학’을 한다. 책을 읽고, 시와 소설을 쓴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너는 왜 문학을 하느냐?’라고 물었다.

어떤 사람들은 문학을 문학 자체를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할 수도 있고, 또다른 사람들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할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후자에 속한다. 고등학교때 처음으로 시를 지었을 때, 나는 단지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어떻게 좀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좀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지금도 그런 정도에서 멀리 발전하지는 못했다. 길을 가다가, 또는 지하철 안에서, 또는 공부하다가도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나는 우선 그것들을 기억해두고, 그것을 효과적으로(여기서 효과적이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를 가진다.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쓰느냐 이고, 좀 더 확장하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공감을 얻느냐 하는 등등.) 표현하기 위해 문학이라는 ‘도구’를 빌린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문학이 뭐냐?”라고 묻는다고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 파스텔을 애용하는 것을 보고 누가 “파스텔이 뭐냐?”라고 묻는다고 해도 난 거기에 대답할 말이 없다. 아니, 여기에는 대답할 가치가 없다. 나는 파스텔로 그림을 그릴뿐이지,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문학’과 ‘파스텔’은 다르다. 문학은 그 자체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파스텔과 다른 점이다. 그리고 내가 문학을 하는 한, 나는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내가 위에서 파스텔의 비유를 든 이유는, 너무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한마디로, 문학이란 것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다가 정작 문학활동을 못하는 경우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문학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김현(1991)은 『한국문학의 위상』이라는 책에서 문학은 억압적인 현실을 그대로 볼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이 사회 곳곳에 억압적 구조가 있지만, 문학 자체만은 그 억압구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은 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문학은 어떤 억압구조도 되지 않고, 더 나아가 다른 억압구조들을 비추어 줄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써먹지 못하는 것을 써먹는다’는 말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나는 문학은 허구이기 때문에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 현실에서 감히 말할 수 없는 것들, 아니면 말하기에 껄끄러운 것들을 작가는 문학을 통해 마음껏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만은 현실도 용인을 한다. ‘문학이니까...허구니까...’하는 생각으로 우리는 문학 속에서의 자유로운 일탈을 용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문학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문학을 택한 것일까? 내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많이 있다. 그 중에서 왜 나는 문학을 택한 것일까?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간단한 문제이다. 내가 문학을 택한 이유는, 그것이 내 주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나는 책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많이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고전이나 ‘좋은 책’이라고 평해지는 그런 류의 것들은 아니었지만, 나는 학교에서도 다른 아이들보다는 책을 많이 읽었다. 그리고 그런 책 하나하나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그래서 나는 아직도 고전〔古典〕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문학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문학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상상의 자유’뿐만이 아니다. 한마디로 문학은, 읽기도 쉽지만 쓰기도 쉽다. 여기서 ‘쓰기 쉽다’는 것은 좋은 문학작품을 쓰기가 쉽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창작하는 데에 제약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지하철에서도, 길을 걷다가도 문학 창작은 가능하다(요즘 내가 쓰는 시의 거의 대부분이 기숙사로 홀로 걸어가는 길에 착상된 것이라는 것은 이런 말을 그대로 증명해준다). 이런 것은 영화나 연극, 미술, 음악 등에 비추어볼때 확연히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학을 택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말해도 아직 문학의 문(文)자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나는 문학(文學)을 문학(門壑:개울을 건너는 문.)적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나에게 아직 문학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보다는 어떤 것을 위한 수단적 의미로밖에 다가오지 않는다(그 목적이 어떤 것일지, 어떻게 변해갈지는 나 자신조차도 감을 잡지 못한다). 그래도 내 짧은 소견이나마 이렇게 글로 정리를 해 본 것은 이제 방학 때 있을 몇몇 내 창작을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아직은 읽어본 책도 부족한 내가 감히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게 어쩌면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느낀 것을 최대한 문학(文學)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은 문학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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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교생 때 서울사대부여중 학생들이
합창대회에서 부른 노래...
(물론 이 노래는 애들이 직접 부른 게 아니라, 원곡 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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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

2009. 9. 1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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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콜 요청 금지

노래 : 브로콜리 너마저

작사 : 윤덕원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날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잡는 척이라면은 여기까지만
제발 내 마음 설레이게 자꾸만 바라보게
하지 말아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냥 스쳐 지나갈
미련인걸 알아요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때 그 맘이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런 말하는
그런 내가 잔인한가요

제발 내 마음 설레이게 자꾸만 바라보게
하지 말아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냥 스쳐 지나갈
미련인걸 알아요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때 그 맘이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런 말하는
그런 내가 잔인한가요
아무래도 네가 아님 안되겠어
이런 말하는 자신이 비참한가요
그럼 나는 어땠을까요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런 말하는
그런 내가 잔인한가요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날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잡는 척이라면은
여기까지가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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