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모든 매체에서 한 아이의 이름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나영이' 사건.
나영이.

우선 이 글에서는 임시로, '그 사건'이라고 부르자.
왜냐고? 나는
'그 사건' 자체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그 사건'을 말하는 것 자체에 대해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범죄에 대해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피해자학이라는 것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거의 발달되어 있지도 않지만, 형법의 철학과 역사가 조금이라도 중시되는 나라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다. 아니, 굳이 연구까지 하지 않더라도, '피해자를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대명제에 대해 누가 반론을 제기할까? 재판에서는 흔히 원고(검사)와 피고(범죄자)의 대결 구도가 주목을 끌지만, 그 주목받지 못하는 방청석 구석에서 피해자와 그/녀의 가족들은 항상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건을 명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중매체가 발달한 우리 사회에서, 사건의 내용보다도 사건의 이름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건의 이름은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뉴스와 라디오, 인터넷을 통해 회자된다. 그 기간이 얼마나 길게 갈지도 모른 채.(물론 우리 사회의 특성 상 그리 오래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게 더 슬픈 일일지도 모르지......)


회자(膾炙)된다.
무슨 의미인지 아시는지?

회膾 : 잘게 저민 날고기 / 회치다
자炙 : 고기를 굽다


'나영이 사건'이 회자된다.
'나영이 사건'이 잘게 저며지고, 회쳐지고, 고기 굽듯 구워져서, 사람들에게 소비된다.
'나영이'가 잘게 저며지고, 회쳐지고, 고기 굽듯 구워져서, 사람들에게 씹힌다.(알다시피, '씹히다'는 속된 의미로 '부정적으로 거론되다'는 뜻이다.)

라고 느끼는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일까?

물론 '나영이'는 가명일 것이다.(만약 가명이 아니라면, 그 사건 이름을 최초로 붙인 사람은 나영이를 정말 두번 죽이는 살인자다!)
그렇지만 나는 불편하다.
사실 내 친구 중에도 나영이가 있는데, 뉴스에서 '나영이 사건'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리고 그 사건의 내용을 들을 때마다 섬찟섬찟 놀라곤 한다. 마치 친구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겨우 친구 이름이 나영이라도 이렇게 간담이 서늘해지는데, 대한민국의 수많은 나영이들 - 솔직히 '나영'은 너무나도 흔한 이름이다. - 의 마음은 어떨까?


꼭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그것도 사람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차라리,
가해자를 연상시키는 가명을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도리어
'철수아저씨 사건'이라고 붙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앗, 이름이 철수이신 분께 죄송합니다. 그냥 국어책에 나오는 이름이라 생각해 주세요. 꾸벅.)

어떤 이름(가명일지라도)을 사회에 어쩔 수 없이 회자시켜야 한다면,
피해자의 이름보다는 가해자의 이름을 회자시키는 게
피해자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것이지 않을까?
가해자에게도 심리적, 사회적 형벌이 더 크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 우리도 회자, 즉 씹는 맛이 더 났을 것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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