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문진영(고양예고 3학년)
_ 내가 약간 수정함.


  독수리가 되고 싶다, 라고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한번도 뭐가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또래 아이들이 한번쯤 막연히 꿈꿔보는 연예인이라는 것도 말이다.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커서 뭘 하고 싶니, 라고 물으면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엄마'라고 대답했다. 그땐 모두들 웃고 넘겨버렸다. 물론 나종차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고2 겨울방학을 흘려보개고 있는 지금, 남들보다 뛰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너무도 엉뚱하게 독수리가 되고 싶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것저것을 많이 배웠지만, 두 달을 넘긴 적이 없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 도레미파솔을 치는 게 가장 쉽고 재밌듯 내가 배웠던 태권도나 기타도 그랬다. 기본 동작을 배우며 설레거나 아주 쉬운 것을 해냈을 때의 뿌듯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점점 어려워지는 동작이나 멜로디에서 헤매다가 결국엔 학원을 끊어버리기 일쑤였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시작하는 것이 너무 쉬웠던 것만큼 포기하기도 쉬웠다. 그리고 장래 희망이 없다는 게 부끄러운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학년은 올라갔고, 오히려 고학년이 된다는 것에 더 끌렸는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나는 최선을 다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외워야 할 동작이 맣아지고 오선지에 띄엄띄엄 걸려있던 음표들이 빽빽해지면, 몇 번 해보지도 않고 덮어버렸다.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답답하고 손가락이 아프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해보겠다, 라는 의지가 없었고 모든 걸 금방 질려하는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었던 것 같다.
  독수리가 되고 싶었지만 나는 실제로 독수리를 본 적이 없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본 게 전부였다. 절벽 끝 바위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날카로운 눈빛에 나는 빠졌다. 그러다 산 중턱에 사슴 몇 마리가 지나가면 빠르게 한 마리를 낚아채 산 아래로 떨어뜨린다. 그렇게 죽은 사슴을 다시 잡아 절벽에 있는 둥지로 돌아간다. 프로그램의 해설자는 독수리의 사냥법이 아주 기막히다고 말했다. 땅에서 다른 동물들이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를 무서워하지만 어떻게 보면 동물의 왕은 독수리일 수도 있다고 했다. 자기 몸통의 두 배만한 날개를 펄럭이며 새들 중에 가장 높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가 나는, 부러웠다. 공부는 물론 어느 것 하나도 잘하는 게 없다고 좌절하던 나에게, 태어날 때부터 사냥에 유리한 발톱과 부리, 그리고 크고 힘센 날개를 가진 독수리가 부러울 수밖에.
  나는 그렇게 막연히 독수리를 부러워했다.
  어느날, 케이블 채널에서 불법으로 야생동물을 생포하는 사람들에 대한 프로그램을 봤다. …<중략>…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이라 불릴 만큼 사납고 그만큼 힘이 세죠. 하지만 이렇게 강한 독수리가 되기까지 독수리는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독수리의 강한 모습만 기억할 뿐 그 뒷면은 알지 못하죠.
  독수리는 나이가 들면 부리와 발톱이 구부러져 더이상 사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 때에 이르면 독수리는 바위에 부리를 찧어 부스러뜨리고, 새로운 부리가 돋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약 150일 정도가 지나고 부리가 새로 돋으면 독수리는 자신의 깃털과 발톱을 뽑아 버리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지요.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독수리는 강해질 수 ……."
  내레이션이 아주 점잖은 모솟리로 내 귀에 들어왔다. 독수리가 큰 눈을 껌벅이며 사냥감을 노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아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독수리의 눈이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깊어 보였다.
  독수리가 되고 싶다. 그 어떤 것에도 최선을 다한 적이 없는 나에게, 조금만 힘들어지고 버겁게 느껴지면 금방 포기해 버리는 나에게 독수리는 아주 좋은 본보기이다. 독수리는 자신의 발톱과 부리가 구부러져 굶어 죽게 되어도, 부리를 바위에 찧으면서까지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그런 반면 나는 항상 힘들고 부담스럽다고 툴툴거리기만 했다. 그러면서 다른 새들보다 더 높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최고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만 했다. 자신의 부리를 바위에 찧으며 느끼는 고통이나 인내를 겪어본 적도 없고, 더 높이 날기 위해 몇 번을 뒤뚱거려 보지도 않았으면서…….
  독수리처럼 살고 싶다. 툭, 하고 내게 던져진 것만 받아먹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대가를 얻고 싶다. 독수리가 날기 위해 뒤뚱거리는 것처럼, 어려운 걸 틀려보기도 하고, 몸에 익숙치 않아 넘어져 보면서 배워 나가고 싶다. 한번에 높이 오르는 걸 바라기보다는 천천히 날개짓을 하며 좀더 높은 곳을 날고 있는 나를, 꿈꿔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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