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학교 4학년 때까지 나눗셈을 못했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정말 못했다. 그래서 국민학교 4학년 때까지 나머지 공부를 했다.

그날도 역시나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 말고도 몇 명 더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앞에서 선생님도 무심하게 책을 읽으며, 칠판에 이렇게 써 놓으신 상태였다.

"다 풀고 검사 맡아야 집에 간다."


연필 소리. 머리 긁는 소리. 사각사각. 긁적, 톡. 지우개 지우는 슥슥 소리.

"다 풀었다...!"


그리 크진 않았지만, 한숨인지 고함인지 탄식인지 함성인지 모를 미묘한 음색이었지만,
적막한 교실에서 모두의 주목을 끌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모두의 눈은 그 탄식의 주인공을 확인하고 조금 더 커졌다.

그 탄식의 주인공은,
반에서 가장 나눗셈을 못 하고 산수에서 거의 젬병에 가깝던, 바로
나였으니까.

"야, 정말 다 풀었어?"
"어...... 한 문제."


어이없다는 웃음, 킥킥대는 비웃음이 한바탕 교실을 휩쓸고, 선생님의 혀차는 소리가 다시 교실을 정적으로 복원시켰다.
그러나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정말 그 문제, 그걸 풀었다는 게 너무 기뻤기 때문이다.



그리고 16년 후, 나머지 공부를 하던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누군가의 나머지 공부를 봐주는 과외샘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과외를 하던 그 아이는, 그 시절의 나만큼이나 돌머리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고3이고 조금 있으면 수능을 쳐야 하는 아이가 영어 발음을,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배우는, 아니 요즘은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들이 배우는 퐈~닉스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 놓고 어머니께서는 "얘 외국어 40점만 올려주세요~"
어머니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 아이는 한 번도 자기 손으로 영어 문제를 풀어본 적이 없었다.
"그럼 뭘로 점수가 20점은 나오니? "
"잘 찍거든요."
가장 기초부터 시작했다.
"자, 따라해 봐. I my me mine."
"I my me..."
" '메'가 아니라 '미'라고!"
"......왜요?"
"............"

한 달이 지났다. 모의고사를 쳤다. 점수는? 7.5점.
어머니가 난감한 눈빛으로 다가왔다. 음, 짜르시려나 보다... 했는데,
"선생님, 선생님 이번에 임용고사 친다고 하셨죠? 근데... 애가 재수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 내년에는 못 하시나요?"
이건 뭔 소리. 애를 불렀다. 하는 말이 가관이다.
"샘, 저 처음으로 제 손으로 두 문제나 풀었어요!!!! 잘 했죠?*^o^*"

진정으로 기뻐하는 그 아이를 보며, 나는 16년 전의 내 모습을 겹쳐보았다.



결국 그 아이는 수능을 포기했다. 19살짜리에게 14살짜리의 공부는 너무 어려웠을까?
아니, 19살짜리가 14살짜리 공부를 하는 것을 사회가, 부모님이, 받아들이기에 너무나도 어려웠을까?

느리지만 기쁜 교육은, 빠르지만 삭막한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기에 정말 불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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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봉★샘과 닿고싶다면... by 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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