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과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종교의 자유가 있는 건 인정한다'그러나 거기에는 이러저러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식의 '인정한다,그러나'의 정신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헌법해석은 대부분 '인정한다,그러나'쪽에 가깝습니다.
기본권에 대해서는 온통 공자님 말씀같은 좋은 말로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막상 구체적 사례에 들어가면 왜 그 권리가 제한될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하는데 10페이지를 할애한 법률책들이 다 여기에 속합니다.

똑같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둘은 전혀 다릅니다.

헌법을 이해하는 열쇠말은'인정한다,그러나'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헌법은 '그림의 떡' 또는 '잘 포장된 한 장의 종이쪽지'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권력자들은 누구나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인정한다,그러나'의 논리를 들이대며
자기 눈에 거슬리는것을 마음대로 제한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막지 못하면 이미 헌법이 아닌것이지요.

상당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헌법정신은 종교의 자유를 기본권의 하나로 받아들였습니다.
위험을 감수할 만한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석권한을 독점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고자하는 사제 계층에 관해서는 이미 한 번 언급하였습니다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정신은 그 반대지점에 위치한 것입니다.

평신도들에게도 성경을 읽고 해석한 권리를 인정한 개신교의 종교개혁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죠.
이단종파를 막고 교리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법은 최고 기관에서 성경 해석권을 독점하고 다른 평신도들은 모두 그 해석을 따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리에 어긋나면 모두 처벌하면 됩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그런 손쉬운 방법 대신 평신도 모두에게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사제계급의 특권을 부인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물론 우리나라 개신교 목사들은 가톨릭 신부들 이상으로 성경해석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요즘의 가톨릭은 교리문제에서도 개신교보다 개방적 입장을 보여줄때가 많지요)
당장은 혼란스러워 보이지만,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의지'를 실현하는 진리의 길이 바로 평신도 성경 해석권 인정에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게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믿습니다.


종교의 자유도 똑같습니다.
다소의 위험이 있더라도 각자가 자신의 진리를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위대한 정신을 일반적인 법률유보조항 하나로 한 방에 날리려고(무시하려고)하는 것은 헌법의 기초를 흔드는 위험한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종교의 자유를 '내면적 신앙'과 '외적활동'으로 구분하고,
외적활동에 대해서는 실정법과 충돌할 경우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헌법학자들의 일반적 주장에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에서는 전형적인 '인정한다,그러나'의 정신만 발견할 수 있을뿐
도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차피 규제가 불가능한 내면적 신앙은 따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별로 침해받을 일이 없는 것입니다.

종교의 자유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표현되었을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도 외적인 종교활동과 실정법이 충돌하면 무조건 실정법의 손을 들어주는 태도를 택하는것은 사실상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손쉬운 해석의 길을 선택한 덕분에 우리 헌정사에는 종교의 자유와 실정법이 충돌한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충돌이 있었다 하더라도 늘 일방적으로 실정법이 승리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전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종교란 그지없는 맹목입니다.
너무나 비이성적인 것이어서 비종교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의 자유는 자기 눈으로 볼때 확실히 이상해 보이는 행동이지만, 헌법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그럼에도 불구하고'그 이상한 행동을 관용한다는 것입니다.
이상해 보이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 관용한다는 것은 이미 관용이 아니지요.
설사 종교의 자유에 일정한 제한을 가한다 하더라도 그 제한이 기본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1)


사상의 자유라는것은 그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것 까지도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까지를 의미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상의 자유는 아무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나 다수파의 자유니까. -버나드 쇼


<중략>


1)인용은 김두식 저 [헌법의 풍경] 교양인 간.
2)인용은 마루야마 마사오의 저서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한길사.,김석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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