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의/숙명여대 연구교수, 개경학연구소장 
_ 안산시민신문 http://www.ansansimin.com/

  장자(莊子) 변무(騈拇篇)에는 “천하에서 가장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태어날 때 그대로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다고 하더라도 늘여주면 우환이 되고(鳧脛雖短 續之則憂), 학의 다리가 비록 길다고 하더라도 자르면 아픔이 된다(鶴脛雖長 斷之則悲).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잘라서는 안 되며 본래 짧은 것은 늘여서도 안 된다. 그런다고 해서 우환이 없어질 까닭이 없다. 생각건대 인의(仁義)가 사람의 본성일 리 있겠는가! 저 인(仁)을 갖춘 자들이 얼마나 근심이 많겠는가”라고 하여, 자연(自然)의 이치(理致)나 도리(道理)에 어긋난 일을 억지로 행함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각각의 사물에는 자기만의 적절한 면이 있으므로 함부로 손익(損益)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사물에는 각각 주어진 성질이 있으므로 과부족이 없는 것입니다. 자연 역시 각자 지닌 개성이 있으므로 사람이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마찬가지여서 각각 태어난 기질을 가지고, 직분에 따른 책무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하면 공연히 번거로울 뿐입니다. 때문에 우리 역시 직분(職分)에 따른 각각의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학의 다리를 자르거나 오리의 다리를 늘린다고 해서 학이 오리가 되지 않고 오리가 학이 되지 않습니다. 그대로 있어야만 ‘학’이 되고 ‘오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내가 죽었을 때 장자는 술독을 안고 노래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장자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장자의 태도를 지금의 잣대를 가지고 판단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장자가 그러했듯이 인간의 상대적인 행복은 본성의 자유로운 발휘로써 얻을 수 있지만, 절대적인 행복은 사물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절대적 행복과 절대적 자유는 사물의 필연성을 이해하고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의 필연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道)의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과의 합일(合一)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자의 ‘이리화정(以理化情)’입니다. 도의 이치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 합일하여 소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은 정서적인 유대와 공감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자연이든 남의 마음이든 자기 것으로 만들수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대하여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장자의 이리화정은 가슴으로 느끼는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저것은 이것에서 나왔으며, 이것 또한 저것에서 나왔다. 이것이 또한 저것이오. 저것 역시 이것이다(彼出於是 是亦因彼 是亦彼也 彼亦是也)’라고 하여 모두가 하나임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학의 길다란 다리가 거추장스럽게 보여 애정이 가득한 마음으로 학의 다리를 잘라주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학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기뻐했을까요, 아니면 슬퍼했을까요. 우리는 자신만의 잣대로 남의 삶을 평가하거나 조작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결국 있는 그대로 받아드려야 하고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존재에게 통용되는 절대적 기준, 진리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이 나보다 많다고 여기는 것, 내가 남보다 적다고 여기는 것은 결국 마음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그것조차도 길다고 그것을 여분으로 여기지 않고 짧다고 그것을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 이것이 자연이며 지극한 무소유의 세계입니다. ‘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이 붙은 것을 가르면 울고, 육손을 물어뜯어 자르면 소리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장자가 말하려는 인의(仁義)는 사람의 천성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분명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오리의 다리는 너무 짧고 학의 다리는 너무 길어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사람의 관점에서 ‘그럴 것’이란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오리나 학의 입장에서는 원래보다 길어지거나 짧아진 다리가 오히려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걱정해주거나, 남을 욕하는 것도 바로 자신의 일방적인 생각만을 강요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는 소통의 부재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와 달라 보인다고 해서,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면 안 되듯이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야만 서로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 통하는 것, 이걸 ‘소통’이라고 합니다. 안산이 어떻다고 말하는 것보다 지금은 지켜보아야 할 때입니다. 장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와 말의 발이 네 개 있는 것 이것이 천(天)이요, 말머리에 고삐를 씌우고 소의 코를 뚫는 것 이것이 인(人)이다. 그러므로 인위(人爲)로써 자연(自然)을 멸하지 말며, 고의(故意)로써 천성(天性)을 멸하지 말며, 명리(名利)로써 천성의 덕(德)을 잃지 말라. 이를 삼가 지켜 잃지 않는 것을 일러 천진(天眞)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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