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순 소들을 놓아먹이는 산꼭대기 풀밭에 사과나무 싹들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두 해쯤 지나면 풀 뜯는 양떼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랍니다. 하지만 황소들이 좋아하는 먹잇감이어서 사과나무 가지가 한 뼘씩이나 갉아 먹히고는 해요. 한 20년 가량 이렇게 소에게 뜯어먹힌다는군요.
사과나무는 한 가지를 갉아 먹힐 때마다 두 가지를 돋아나게 하며 옆으로 옆으로 퍼져갑니다. 쉽게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가지들이 빽빽하게 자라면서 가시까지 돋게 하여 자기를 보호해 갑니다. 이렇게 20년쯤 위로 자라지 않고 옆으로 퍼지면서 자기를 지키던 사과나무는 더 이상 공격받지 않을 중심부에 어린 가지 하나나 둘이 돋아나게 합니다. 그동안 넓게 퍼지면서 응축해 온 생명력을 신생 가지에 쏟아부어 급속하게 자라게 합니다. 나무 아랫부분에 넓게 형성된 가지 무리 위로 사과나무가 본격적으로 자라 오르면, 역할을 다한 밑가지들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리하여 이제 더 이상 해칠 수 없는 소들이 우뚝 솟은 사과나무에 몸을 비벼대며 자기 그늘에서 쉴 수 있게 합니다.
사과나무는 산꼭대기에서 겨울 찬바람을 스무 번도 넘게 견딘 강건함으로 당당하게 자기의 생명을 이어갈 열매를 맺습니다. 자기의 인고를 지켜보며 함께 기도하였던 새들은 물론, 자기를 뜯어먹었던 소들까지도 열매를 먹을 수 있게 합니다. 그리하여 발 없는 우리 야생 사과나무는 저 소들이 자기의 생명을 이어갈 어린싹이 멀리 퍼지게 할 협력자가 될 수 있게까지 합니다.(H.D.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참조)

1999.08.10 | 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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