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차별했던 과학
19세기 유럽은 턱의 모양, 안면의 각도, 골격과 척추 사이의 각도, 골격의 모양, 두뇌에 관한 측정을 토대로 인종과 남녀를 구별하려고 하던 인체측정학, 또는 골상학(craniology)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풍미했던 시절이었다 . 뇌의 크기 또는 무게를 달고서, 여성은 역시 지능이 낮다거나, 골격으로 보아 여성은 백인 아동이나 열등한 인종의 골격과 비슷하다는 골상학적 근거를 늘어놓았고, 따라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한 것은 당연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주장을 늘어놓았다. 당시 골상학을 신봉하던 남성 과학자들은 '여성에게 동등한 교육을 베풀어 그 결과로서 그녀들에게도 똑같은 목표를 추구하게 하려는 욕구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망상이다'라고 강변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뇌가 작거나 가볍다고 제시한 증거는 여성의 신체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었다. 체중을 감안하여 여성이 남성보다 높게 나온 재조사 수치는 틀린 증거로 즉각 기각하는 기민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당시 골상학은 인종차별의 합리성을 가장하는데 곧잘 사용되어 '흑인 남자는 백인의 여자보다 뇌가 무겁지 않다'는 이유를 들고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데 동원하기까지 했다 .
역사상 여성 과학자는 많지 않다. 골상학적 지능이 뒤쳐지기 때문이었을까. 여성학자는 그 이유를 '오랫동안 여성들은 과학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어려서부터 가정과 사회에서 실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받은 교육의 여파로 과학분야에 발을 내딛기 어려웠던 환경을 그 주된 이유로 지적한다.
사회의 편견 속에서도 과학자의 길을 걸었던 서구의 많은 여성들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프랑스의 화학자 라브와지에의 부인인 마리-안느 삐에레뜨 뽈즈는 집안에 마련된 화학실험실에서 직장으로 바쁜 남편을 대신해 직접 실험에 몰두했으나 그녀의 이름은 한 편의 논문에도 기록될 수 없었다. 영국 왕립학회는 1902년 케임브릿지 대학 출신 여성 물리학자 에어튼의 회원 가입을 결국 부결했고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1945년에 가서야 첫 여성회원을 허락할 정도였다. 1911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에게조차 추천을 거부하는 편견을 행사하여, 그 해 두 번째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학자를 끝내 외면했던 것이다. 우라늄의 분열관계를 밝혀내 1966년 엔리꼬 페르미상을 수상한 독일의 리제 마이트너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베를린 대학의 연구소 출입을 청소부들이 출입하는 반 지하 뒷문을 사용해야 했으며 약속대로 복도에는 얼씬도 하지 않아야 했다. 당시의 여성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남성 과학자들의 편견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http://m.blog.daum.net/brilsymbio/482199
19세기 유럽은 턱의 모양, 안면의 각도, 골격과 척추 사이의 각도, 골격의 모양, 두뇌에 관한 측정을 토대로 인종과 남녀를 구별하려고 하던 인체측정학, 또는 골상학(craniology)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풍미했던 시절이었다 . 뇌의 크기 또는 무게를 달고서, 여성은 역시 지능이 낮다거나, 골격으로 보아 여성은 백인 아동이나 열등한 인종의 골격과 비슷하다는 골상학적 근거를 늘어놓았고, 따라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한 것은 당연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주장을 늘어놓았다. 당시 골상학을 신봉하던 남성 과학자들은 '여성에게 동등한 교육을 베풀어 그 결과로서 그녀들에게도 똑같은 목표를 추구하게 하려는 욕구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망상이다'라고 강변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뇌가 작거나 가볍다고 제시한 증거는 여성의 신체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었다. 체중을 감안하여 여성이 남성보다 높게 나온 재조사 수치는 틀린 증거로 즉각 기각하는 기민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당시 골상학은 인종차별의 합리성을 가장하는데 곧잘 사용되어 '흑인 남자는 백인의 여자보다 뇌가 무겁지 않다'는 이유를 들고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데 동원하기까지 했다 .
역사상 여성 과학자는 많지 않다. 골상학적 지능이 뒤쳐지기 때문이었을까. 여성학자는 그 이유를 '오랫동안 여성들은 과학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어려서부터 가정과 사회에서 실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받은 교육의 여파로 과학분야에 발을 내딛기 어려웠던 환경을 그 주된 이유로 지적한다.
사회의 편견 속에서도 과학자의 길을 걸었던 서구의 많은 여성들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프랑스의 화학자 라브와지에의 부인인 마리-안느 삐에레뜨 뽈즈는 집안에 마련된 화학실험실에서 직장으로 바쁜 남편을 대신해 직접 실험에 몰두했으나 그녀의 이름은 한 편의 논문에도 기록될 수 없었다. 영국 왕립학회는 1902년 케임브릿지 대학 출신 여성 물리학자 에어튼의 회원 가입을 결국 부결했고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1945년에 가서야 첫 여성회원을 허락할 정도였다. 1911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에게조차 추천을 거부하는 편견을 행사하여, 그 해 두 번째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학자를 끝내 외면했던 것이다. 우라늄의 분열관계를 밝혀내 1966년 엔리꼬 페르미상을 수상한 독일의 리제 마이트너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베를린 대학의 연구소 출입을 청소부들이 출입하는 반 지하 뒷문을 사용해야 했으며 약속대로 복도에는 얼씬도 하지 않아야 했다. 당시의 여성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남성 과학자들의 편견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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