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댓말이 싫다.
조금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는 반말을 하고 누구는 존댓말을 하는, 그런 문화가 나는 싫다.
우리나라는 유독 '나이'에 민감하다. 태어난 년도를 기준으로 나이를 나보다 한 해라도 먼저 태어났으면 형, 누나, 오빠, 언니. 나보다 한 해라도 늦게 태어났으면 동생.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지도 못한다. 같은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났더라도, 흥부는 놀부를 '놀부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고, 놀부는 흥부를 '흥부, 이놈아'라고 불러도 되는 것이다.
호칭을 부를 때부터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지, 적은 지를 생각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위계가 생긴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윗사람, 나보다 나이가 적으면 아랫사람. 이런 위계에 익숙해진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나이 뿐만이 아닌 여러 기준으로 자신도 모르게 위계를 따지게 된다. 중고등학교에서는, 학년이 높으면 윗사람. 학년이 낮으면 아랫사람. 대학에 와서도, 학번이 높으면 윗사람. 학번이 낮으면 아랫사람. 취직을 해도, 직급이 높으면 윗사람, 직급이 낮으면 아랫사람.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연령, 학력, 재산, 직업 등을 비교하며 누가 윗사람이고 누가 아랫사람인지 따지게 된다. 이렇게 위계 질서에 익숙해진 우리는, 본질을 잃게 된다.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위계에 맞춰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위계가 매우 공고했다. 아우가 형님에게, 평민이 양반에게, 신하가 임금에게, 무조건적인 예의를 지켜야 했으며, 높은 사람의 의사를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것은 '버르장머리'가 없는 행동으로 비추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조선시대에 살고 있나 보다. 지금도 몇몇 학교에서는 선배라는 명목으로 후배들의 행동을 제한하고, 일부 가정에서 부모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서 자유를 빼앗으며,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상사라는 명목으로 부하 직원에게 자신의 업무를 떠넘긴다.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놓은 '윗사람'과 '아랫사람' 프레임에 갇힌 채,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부당하거나 비논리적인 지시에도 감히 반발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랫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꺼낼 기회조차 묵살당한 채, 그저 부당함을 짊어지며 '윗사람'들의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할 수 없게 되고, 이는 우리 사회의 발전에 있어 크나큰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위계'라는 것은,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도 효율을 떨어트린다. 동갑내기의 친구라면 충분히 허용될 농담도, 장난도, 나이에 차이가 생기면 서로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새내기 때부터 이런 아쉬움을 느꼈다. 여러 선배들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나이라는 것이 걸림돌이 되어, 대화를 하면 할 수록 선배는 점점 '선배'가 되어 가고, 나는 점점 '후배'가 되어 가는 것이었다. 심지어 충분히 친하다고 생각되는 선배와 있을 때에도 정말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 받는 느낌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아쉬움은, 내가 선배가 되었을 때 더욱 공고해졌다. 내가 원하지 않은 '윗사람'이라는 지위를 강제로 떠맡게 되면서, 나를 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후배들에게 나 또한 편하게 말을 붙일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한 해 후배들에게는 말을 편하게 하라면서 더 친해질 수 있었지만, 후배의 후배의 후배까지 들어온 상황에서, 이제는 말을 편하게 하라는 말이 더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어른을 공경하기 싫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른만 공경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아랫사람'이 되기 싫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윗사람'이 되기 싫다는 것이다.
나는 존댓말이 싫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510108099080817&id=560898400668463
조금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는 반말을 하고 누구는 존댓말을 하는, 그런 문화가 나는 싫다.
우리나라는 유독 '나이'에 민감하다. 태어난 년도를 기준으로 나이를 나보다 한 해라도 먼저 태어났으면 형, 누나, 오빠, 언니. 나보다 한 해라도 늦게 태어났으면 동생.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지도 못한다. 같은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났더라도, 흥부는 놀부를 '놀부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고, 놀부는 흥부를 '흥부, 이놈아'라고 불러도 되는 것이다.
호칭을 부를 때부터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지, 적은 지를 생각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위계가 생긴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윗사람, 나보다 나이가 적으면 아랫사람. 이런 위계에 익숙해진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나이 뿐만이 아닌 여러 기준으로 자신도 모르게 위계를 따지게 된다. 중고등학교에서는, 학년이 높으면 윗사람. 학년이 낮으면 아랫사람. 대학에 와서도, 학번이 높으면 윗사람. 학번이 낮으면 아랫사람. 취직을 해도, 직급이 높으면 윗사람, 직급이 낮으면 아랫사람.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연령, 학력, 재산, 직업 등을 비교하며 누가 윗사람이고 누가 아랫사람인지 따지게 된다. 이렇게 위계 질서에 익숙해진 우리는, 본질을 잃게 된다.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위계에 맞춰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위계가 매우 공고했다. 아우가 형님에게, 평민이 양반에게, 신하가 임금에게, 무조건적인 예의를 지켜야 했으며, 높은 사람의 의사를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것은 '버르장머리'가 없는 행동으로 비추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조선시대에 살고 있나 보다. 지금도 몇몇 학교에서는 선배라는 명목으로 후배들의 행동을 제한하고, 일부 가정에서 부모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서 자유를 빼앗으며,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상사라는 명목으로 부하 직원에게 자신의 업무를 떠넘긴다.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놓은 '윗사람'과 '아랫사람' 프레임에 갇힌 채,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부당하거나 비논리적인 지시에도 감히 반발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랫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꺼낼 기회조차 묵살당한 채, 그저 부당함을 짊어지며 '윗사람'들의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할 수 없게 되고, 이는 우리 사회의 발전에 있어 크나큰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위계'라는 것은,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도 효율을 떨어트린다. 동갑내기의 친구라면 충분히 허용될 농담도, 장난도, 나이에 차이가 생기면 서로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새내기 때부터 이런 아쉬움을 느꼈다. 여러 선배들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나이라는 것이 걸림돌이 되어, 대화를 하면 할 수록 선배는 점점 '선배'가 되어 가고, 나는 점점 '후배'가 되어 가는 것이었다. 심지어 충분히 친하다고 생각되는 선배와 있을 때에도 정말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 받는 느낌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아쉬움은, 내가 선배가 되었을 때 더욱 공고해졌다. 내가 원하지 않은 '윗사람'이라는 지위를 강제로 떠맡게 되면서, 나를 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후배들에게 나 또한 편하게 말을 붙일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한 해 후배들에게는 말을 편하게 하라면서 더 친해질 수 있었지만, 후배의 후배의 후배까지 들어온 상황에서, 이제는 말을 편하게 하라는 말이 더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어른을 공경하기 싫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른만 공경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아랫사람'이 되기 싫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윗사람'이 되기 싫다는 것이다.
나는 존댓말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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