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지배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박종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고

-2002년 7월 21일

  오랜만에 비디오를 봤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고등학교 때 소설로 읽고 나서 지금와서야 다시 접하는 이야기.
  그런데 지금 와서 어째 답답하다. 고등학교 때는 그리도 통쾌했던 것이, 지금은 왜 답답하게 느껴질까.

  고등학교 때와 지금, 가장 다르게 느끼는 것은 바로 ‘김선생’이다. 아이들에게 진실과 자유를 가르쳤던 선생님. 고등학교 때는 마냥 존경스러웠다. 아니, 마치 억압된 아이들을 구해주는 구원자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일까. 영화는 소설과 달리 이미지를 중심으로 흘러가서 그런가. 그에게서 엄청난 ‘폭력’의 냄새가 나는 것은. 김선생이 엄석대의 우상을 깰 때를 회상해 본다. 수학답안지 위에 ‘쾅’하면서 강렬히 부각되는 몽둥이. 그리고 엄석대에게 가해지는 엄청난 매. 또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벌. 책상위에 꿇어 앉아서 선생님에게 차례로 매를 맞는 장면은 나에게 본능적 공포와 거부감을 가져다 주었다. 자유의 공간인 대학에 다니면서, 어쩌면 잊혀진 기억으로만 치부해 놓은 벌. 중학교 때 벌받던 장면이 5년의 시간을 넘어서 오버랩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잠재되어 있는 폭력에 대한 거부감일까. 그때부터 나는 김선생에게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김선생이 ‘김의원’이 되어 나타났을 때, 나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엄석대와 똑같은 것이다. 힘,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제압하는 것. 단지 다른 것은, 엄석대는 불의를, 김선생은 정의를 말했다는 것 뿐.
  한병태는 어떨까. 그의 저항과, 굴복. 그리고 그는 마지막 순간에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라고 대답한다. 왜일까. 어쩌면 그는 폭력에 의해 통제되는 아이들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엄석대보다 더 큰 폭력 앞에서 아이들이 더 큰 폭력의 힘에 기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환멸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는 왜 이걸 몰랐을까. 어쩌면 그때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폭력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들이 잘못하면 때리는 것이 당연하고, 도리어 그 선생님이 옳은 일을 했다는 생각. 지금 생각하면 엄청나게 무서운 생각이다.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나의 체벌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사랑의 매도 결국 매일 뿐이다. 폭력을 인정하는 것은, 더 큰 폭력을 조장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오랜만에 나의 생각의 변화를 낳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심지어 정의의 이름에 있어서도 폭력을 통한 지배는 정당화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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