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밖의 되새김질 > 라디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래가 상황을 만났을 때 (1) | 2009.11.10 |
---|---|
라디오 멘토 - 부모 / EBS 라디오 091029木 11:00~ (0) | 2009.11.01 |
다르지만 같이 사는 방법 (0) | 2009.10.28 |
MBC 라디오 (0) | 2009.10.15 |
우산 _ 2008.7.24. 그대의 향기 송채환입니다. 中 흑백사진 (0) | 2009.10.11 |
노래가 상황을 만났을 때 (1) | 2009.11.10 |
---|---|
라디오 멘토 - 부모 / EBS 라디오 091029木 11:00~ (0) | 2009.11.01 |
다르지만 같이 사는 방법 (0) | 2009.10.28 |
MBC 라디오 (0) | 2009.10.15 |
우산 _ 2008.7.24. 그대의 향기 송채환입니다. 中 흑백사진 (0) | 2009.10.11 |
"대~한민국" 함성에 묻힌 한 철거민의 삶 (0) | 2009.10.28 |
---|---|
"대~한민국" 함성에 묻힌 한 철거민의 삶 (0) | 2009.10.28 |
마야의 바이크 투어 _ 스포츠 동아 연재 (0) | 2009.10.28 |
리딩 비저너리 Reading Visionary 가 되자 (0) | 2009.10.21 |
사랑이란, (0) | 2009.10.21 |
루저(looser) 파문 _ 한가선 09.11.20 13:00~14:00 (0) | 2009.11.21 |
---|---|
라디오 멘토 - 부모 / EBS 라디오 091029木 11:00~ (0) | 2009.11.01 |
다르지만 같이 사는 방법 (0) | 2009.10.28 |
MBC 라디오 (0) | 2009.10.15 |
우산 _ 2008.7.24. 그대의 향기 송채환입니다. 中 흑백사진 (0) | 2009.10.11 |
루저(looser) 파문 _ 한가선 09.11.20 13:00~14:00 (0) | 2009.11.21 |
---|---|
노래가 상황을 만났을 때 (1) | 2009.11.10 |
다르지만 같이 사는 방법 (0) | 2009.10.28 |
MBC 라디오 (0) | 2009.10.15 |
우산 _ 2008.7.24. 그대의 향기 송채환입니다. 中 흑백사진 (0) | 2009.10.11 |
월드컵 토고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온 나라가 붉은 물결로 들썩이고 있다. 요즘 뜨는 광고 속 노래로 비유하자면 딱 "한국은 월드컵을 좋아해"란 말이 어울린다. 그렇다고 그들을 나무라지는 말자. 여하튼 스스로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그러나 한 쪽에선 월드컵 때문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생계를 잃을 이들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월드컵이 전혀 반갑지 않다. 이들이 월드컵을 싫어한다고 마찬가지로 이들을 나무라지는 말자. <오마이뉴스>는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월드컵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그늘을 살펴봤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
가장 아름다운 길은 지도 어디에도 없었다. (2) | 2009.11.10 |
---|---|
"대~한민국" 함성에 묻힌 한 철거민의 삶 (0) | 2009.10.28 |
마야의 바이크 투어 _ 스포츠 동아 연재 (0) | 2009.10.28 |
리딩 비저너리 Reading Visionary 가 되자 (0) | 2009.10.21 |
사랑이란, (0) | 2009.10.21 |
월드컵 토고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온 나라가 붉은 물결로 들썩이고 있다. 요즘 뜨는 광고 속 노래로 비유하자면 딱 "한국은 월드컵을 좋아해"란 말이 어울린다. 그렇다고 그들을 나무라지는 말자. 여하튼 스스로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그러나 한 쪽에선 월드컵 때문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생계를 잃을 이들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월드컵이 전혀 반갑지 않다. 이들이 월드컵을 싫어한다고 마찬가지로 이들을 나무라지는 말자. <오마이뉴스>는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월드컵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그늘을 살펴봤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
▲ 지난 1997년 정부는 상암동 일대를 택지개발 구역으로 지정하고 이곳에 상암 월드컵경기장을 건설했다. ⓒ2006 이권재·박수원 |
ⓒ2006 이권재·박수원 |
상암동 철거민 출신인 김상민(가명·36)씨. 김씨는 지난 99년 자신이 살던 곳이 월드컵구장 건설을 위해 철거된 이후 7년 여를 떠돌다 최근 여수에 정착했다. 7년 가까이 벌여 온 철거투쟁을 최근에서야 접고 새 삶을 찾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20대 후반에서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시간을 고스란히 철거투쟁으로 보냈다. 그를 이처럼 힘든 길로 이끈 건 다름아닌 월드컵때문이었다. 당시 김씨와 함께 상암 2공구에 살던 40세대는 전부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2006년 어김없이 월드컵이 다시 찾아왔다.
김씨는 지금도 국가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국가는 월드컵을 이유로 김씨에게서 삶의 터전을 빼앗아 갔다. 그래서 '애국'이란 깃발 아래 하나로 뭉친 월드컵 응원 인파들을 보면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국가, 애국이란 틀 속에서 저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돋아요. 난 국가로부터 당한 게 너무 많은데. 이런 마음은 꼭 상암동 철거민뿐만 아니라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은 모든 소외된 이들도 똑같을 거예요."
김씨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예정지인 대추리 주민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아무리 국익이 최우선이라고 해도 그 때문에 일부 주민들의 권익이 보호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국 계속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20년 전 전두환식 방식과 다른 게 뭐가 있나요? 개발독재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남아 있어요."
"월드컵 기다려지지만 한국경기는 안 볼 거예요"
물론 김씨도 월드컵이 기다려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기는 보지 않을 작정이다. 2002년 월드컵 때는 교도소에서 신문을 통해 월드컵 소식을 접했다. 시청 앞 광장에 모이는 수많은 인파들을 보면서 더 가슴이 아팠다. 3년 넘게 그곳에서 침낭에 의지해 1인 시위를 벌였지만 그에게 관심을 보인 이들은 많지 않았다.
김씨는 7년에 가까운 철거투쟁 기간 동안 4번이나 감옥을 드나들었다. 교도소에서 보낸 시간만도 4년이 넘는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뒤인 지난해 5월 마지막으로 교도소를 나왔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난 뒤 2번째 출소를 했을 때였죠. 다시 시청앞 광장에서 1인 시위를 이어 갔어요. 당시 이명박씨가 막 서울시장에 당선된 직후였을 거예요. 어쩜 그리 시청앞 행사가 많던 지. 일주일이 멀다하고 무대 꾸미고 이명박 시장이 나와서 연설하고. 그토록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한 번도 들어주지 않은 그네들이었죠. 한쪽 구석에 처박혀 그 모습을 보면서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 됐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 시청앞 광장이 지금은 한 대기업의 손에 들어갔다. 방송사와 신문사 등이 섞여 있는 SKT컨소시엄은 월드컵 기간 내내 하루 500여 만원을 주고 그곳에 대한 사용권을 독점했다.
거리응원 교묘하게 이용하는 기업·국가가 더 나빠
"거리응원 자체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아요. 그것 역시 그들만의 자유이니까. 다만 이런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기업과 국가가 못마땅한 거죠. 한 쪽에선 생존권을 외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내몰면서 다른 한쪽에선 월드컵을 무기로 시민들을 자기들 손아귀 아래 적절하게 통제하고 있는 셈이죠. 이게 대한민국입니다."
김씨는 지난해 말 이후 상암동 철거투쟁을 사실상 접었다. 그리고 올해 3월 김씨%
가장 아름다운 길은 지도 어디에도 없었다. (2) | 2009.11.10 |
---|---|
"대~한민국" 함성에 묻힌 한 철거민의 삶 (0) | 2009.10.28 |
마야의 바이크 투어 _ 스포츠 동아 연재 (0) | 2009.10.28 |
리딩 비저너리 Reading Visionary 가 되자 (0) | 2009.10.21 |
사랑이란, (0) | 2009.10.21 |
"대~한민국" 함성에 묻힌 한 철거민의 삶 (0) | 2009.10.28 |
---|---|
"대~한민국" 함성에 묻힌 한 철거민의 삶 (0) | 2009.10.28 |
리딩 비저너리 Reading Visionary 가 되자 (0) | 2009.10.21 |
사랑이란, (0) | 2009.10.21 |
이름 외우는 비결 (0) | 2009.10.21 |
노래가 상황을 만났을 때 (1) | 2009.11.10 |
---|---|
라디오 멘토 - 부모 / EBS 라디오 091029木 11:00~ (0) | 2009.11.01 |
MBC 라디오 (0) | 2009.10.15 |
우산 _ 2008.7.24. 그대의 향기 송채환입니다. 中 흑백사진 (0) | 2009.10.11 |
평화방송 (0) | 2009.10.07 |
“날개를 달면 체중은 무거워지지만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다.”
(전략)
눈을 감아야만 꿈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눈을 뜨고도 꿈꿀 수 있다. 찰스 핸디는 낮에 꿈꾸는 사람들에게 주목했다. “우리는 잠을 자면서 꿈을 꾸지.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낮에도 꿈을 꿔. 이런 사람들은 아주 위험하지. 자신의 꿈을 반드시 이뤄내고 마니까 말이야.”
낮에 꿈꾸며 책을 읽어라. 책 읽는 비전가, Reading Visionary는 꿈을 현실로 이뤄낸다. 원대한 비전을 가슴에 품어라. 그리고, 체 게바라의 말을 가슴에 새겨라.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흔히, 미래는 장밋빛으로 그려지기 쉽다. 미래를 결정하는 변수들을 무조건 좋은 쪽으로 설정해서는 곤란하다. 비전가는 현실을 염두에 둔 현명한 전략을 세운다. “올바른 전략이란 경쟁 업체가 당신보다 뛰어나거나 적어도 당신만큼 유능하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 만큼이거나 그 이상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할 때는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도 적게 행동하고, 적게 행동하면서도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들은 비전가가 아니라 몽상가들이다. 존 맥스웰은 비전가와 몽상가의 행동 특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비전가는 말은 적고 행동은 많이 한다.
반면, 몽상가는 말은 많으나 행동은 적다.
비전가는 자기 내면의 확신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반면, 몽상가는 외부 환경에서 힘을 찾는다.
비전가는 문제가 생겨도 계속 전진한다.
반면, 몽상가는 가는 길이 힘들면 그만 둔다.”
우리 모두 비전가를 소망하자. 비전을 품고, 체 게바라의 멋진 말을 가슴에 새기고 난 다음에는 책을 읽자. 비전을 향한 책읽기를 시도하라. 자신의 비전을 이미 성취한 사람들이 쓴 책을 읽어라.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실무자들이 쓴 책을 읽어라. 비전이란 나의 미래를 생생하게 바라보는 기술이다. 비전을 품는 순간,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나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비전은 지금의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게 만든다. ‘오늘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뭔가 잘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거짓 희망’이다. 책 읽는 비전가, Reading Visionary가 되라. 리딩 비저너리는 날마다 성장하는 영혼이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당신의 비전이 조금씩 명확해질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당신의 비전으로 성큼 다가서게 만드는 과업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과업을 완료하는 순간, 당신은 한 시간 전의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대~한민국" 함성에 묻힌 한 철거민의 삶 (0) | 2009.10.28 |
---|---|
마야의 바이크 투어 _ 스포츠 동아 연재 (0) | 2009.10.28 |
사랑이란, (0) | 2009.10.21 |
이름 외우는 비결 (0) | 2009.10.21 |
김남주 <학살 2> (0) | 2009.10.18 |
마야의 바이크 투어 _ 스포츠 동아 연재 (0) | 2009.10.28 |
---|---|
리딩 비저너리 Reading Visionary 가 되자 (0) | 2009.10.21 |
이름 외우는 비결 (0) | 2009.10.21 |
김남주 <학살 2> (0) | 2009.10.18 |
양파 키우기 (0) | 2009.10.12 |
리딩 비저너리 Reading Visionary 가 되자 (0) | 2009.10.21 |
---|---|
사랑이란, (0) | 2009.10.21 |
김남주 <학살 2> (0) | 2009.10.18 |
양파 키우기 (0) | 2009.10.12 |
새가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힘은, (0) | 2009.10.11 |
학살2
김남주(金南柱)
오월 어느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앗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잡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사랑이란, (0) | 2009.10.21 |
---|---|
이름 외우는 비결 (0) | 2009.10.21 |
양파 키우기 (0) | 2009.10.12 |
새가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힘은, (0) | 2009.10.11 |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 (0) | 2009.10.11 |
라디오 멘토 - 부모 / EBS 라디오 091029木 11:00~ (0) | 2009.11.01 |
---|---|
다르지만 같이 사는 방법 (0) | 2009.10.28 |
우산 _ 2008.7.24. 그대의 향기 송채환입니다. 中 흑백사진 (0) | 2009.10.11 |
평화방송 (0) | 2009.10.07 |
Sunny FM (0) | 2009.10.07 |
이름 외우는 비결 (0) | 2009.10.21 |
---|---|
김남주 <학살 2> (0) | 2009.10.18 |
새가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힘은, (0) | 2009.10.11 |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 (0) | 2009.10.11 |
잡초마저도 (0) | 2009.10.11 |
김남주 <학살 2> (0) | 2009.10.18 |
---|---|
양파 키우기 (0) | 2009.10.12 |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 (0) | 2009.10.11 |
잡초마저도 (0) | 2009.10.11 |
클라이스트 (0) | 2009.10.11 |
양파 키우기 (0) | 2009.10.12 |
---|---|
새가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힘은, (0) | 2009.10.11 |
잡초마저도 (0) | 2009.10.11 |
클라이스트 (0) | 2009.10.11 |
‘영등포 슈바이처’ 기적을 잇는 요셉의원 최영아원장 (0) | 2009.10.07 |
새가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힘은, (0) | 2009.10.11 |
---|---|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 (0) | 2009.10.11 |
클라이스트 (0) | 2009.10.11 |
‘영등포 슈바이처’ 기적을 잇는 요셉의원 최영아원장 (0) | 2009.10.07 |
유일한 박사의 유언 (0) | 2009.10.02 |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 (0) | 2009.10.11 |
---|---|
잡초마저도 (0) | 2009.10.11 |
‘영등포 슈바이처’ 기적을 잇는 요셉의원 최영아원장 (0) | 2009.10.07 |
유일한 박사의 유언 (0) | 2009.10.02 |
흠이 있는 진주 (0) | 2009.10.02 |
<우산>
- 맑은 날 구석에 처박혀있다가, 비오면 애타게 찾아지는 것.
- 찢어져도, 못 생겨도, 비만 막아주면 된다. 버려지지 않음.
‘영등포 슈바이처’ 기적을 잇는 요셉의원 최영아원장 서울 영등포동 ‘쪽방촌’ 입구. 무너져 가는 단층 건물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에 20여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가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몸마저 망가진 행색이 역력했다. 이들이 찾은 곳은 요셉의원이었다. ‘영등포 슈바이처’로 불렸던 선우경식 전 원장이 작고 직전까지 인술을 펼쳤던 병원이다. 의원의 낡은 출입문을 열자 의약품 냄새와 함께 다소 거북한 냄새가 훅하고 다가왔다. 오래 씻지 못한 이들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은 개의치 않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여의사 한 명이 눈에 띄었다. 노숙인으로 보이는 40대 환자에게 “술 끊고, 약을 꼬박꼬박 드세요. 꼭 나을 수 있으니까 잊지 말고 약을 드세요”라며 엄마처럼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최영아 원장. 올해로 서른아홉인 그는 이화여대 의대를 나온 내과 의사다. 지난해 4월 자선의료기관 요셉의원의 새 의무원장이 됐다. 선우 원장이 작고한 다음날이었다. 최 원장은 2001년 전문의 자격증을 따며 “평생 의료봉사를 하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대학 시절 의료봉사를 나갔다가 약 한 번 먹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봤던 기억 때문이었다. 같은 해 선우 원장의 소문을 듣고 요셉의원을 찾았다. “당뇨병과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보고 계셨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환자에게 200만원어치의 약과 주사액을 쓰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없는 사람이라고 질 낮은 의료서비스를 받게 해선 안 된다’는 원칙에 충실하신 분이셨어요.” 이후 선우 원장을 따라 알코올중독자 모임과 꽃동네를 다니며 환자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오랜 거리 생활에 지쳐서 그런지, 의사에게 욕을 하거나 멱살을 잡는 게 예사예요. 선우 원장님은 ‘아프니까 좀 보살펴달라고 그러는 거다’고 가르치셨어요.” 2004년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요셉의원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병원을 그만둔 건 한 환자 때문이었다. 살인죄를 저지르고 청송 교도소에서 15년을 복역한 환자였다. 형광등을 깨뜨려 의사들 목에 들이밀 정도로 난폭했다. 직원들이 모두 “그 사람 못 오게 하자”고 했지만, 그가 감쌌다. “선하든 악하든, 아픈 사람은 모두 우리 환자잖아요.” 결국 견해 차이로 병원에서 떠밀리다시피 나온 그에게 선우 원장이 손을 내밀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최 원장이 받는 월급은 100만원. 하지만 그는 어느 누구보다 행복한 의사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베풂과 사랑을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요셉의원은 19일부터 한 달간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환자를 위한 샤워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다. 서울시에서 공사비 1억원을 지원해 줬다. “후원자가 3000명만 됐으면 좋겠다”던 선우 원장의 생전 소원도 이뤄졌다. 그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뒤 후원자가 3800여 명으로 는 것이다. 최 원장은 “돌아가셔서도 기적을 만드는 분”이라고 했다. 그에겐 소망이 하나 있다. “요셉의원을 찾는 환자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와 사회에서 버림받아왔어요. 피해 의식이 강하죠. 엄마 같은 사랑을 줄 때 상처가 아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지만, 그런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
잡초마저도 (0) | 2009.10.11 |
---|---|
클라이스트 (0) | 2009.10.11 |
유일한 박사의 유언 (0) | 2009.10.02 |
흠이 있는 진주 (0) | 2009.10.02 |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0) | 2009.10.02 |
다르지만 같이 사는 방법 (0) | 2009.10.28 |
---|---|
MBC 라디오 (0) | 2009.10.15 |
우산 _ 2008.7.24. 그대의 향기 송채환입니다. 中 흑백사진 (0) | 2009.10.11 |
Sunny FM (0) | 2009.10.07 |
파워 FM (0) | 2009.10.07 |
다르지만 같이 사는 방법 (0) | 2009.10.28 |
---|---|
MBC 라디오 (0) | 2009.10.15 |
우산 _ 2008.7.24. 그대의 향기 송채환입니다. 中 흑백사진 (0) | 2009.10.11 |
평화방송 (0) | 2009.10.07 |
파워 FM (0) | 2009.10.07 |
파워 FM http://radio.sbs.co.kr/
그대의 향기 송채환입니다.
http://radio.sbs.co.kr/hyang/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http://radio.sbs.co.kr/morningchang/
박소현의 '러브 게임'
http://radio.sbs.co.kr/lovegame/
공형진의 씨네타운
http://radio.sbs.co.kr/cine/
다르지만 같이 사는 방법 (0) | 2009.10.28 |
---|---|
MBC 라디오 (0) | 2009.10.15 |
우산 _ 2008.7.24. 그대의 향기 송채환입니다. 中 흑백사진 (0) | 2009.10.11 |
평화방송 (0) | 2009.10.07 |
Sunny FM (0) | 2009.10.07 |
바닥소리 http://www.badaksori.com/
영욱이형 통해서 우연히 듣게 된 창작판소리극 공연.
"제목이 뭐예요?"
"어 뭐... '닭들... 날다'였던가?"
이 말을 듣고 영화 '치킨 런'을 떠올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내용보다는 창작판소리라는 것에 끌려서,
그리고 형이 "이분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라고 하는 추천에 이끌려서 공연을 보러 갔다.
대학로 정美소라는 공연장에 들어서자 마자, "1분 후 공연 시작합니다~"하는 소리. 다행이다, 하며 자리를 찾아들어갔다. 공연 전 설명부터 판소리로 시작되는 게 눈길을 끌었다. 그냥 건조하게 말하는 것보다는, 가락에 실어 말하는 것('아니리'라고 할 수 있겠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새삼 깨달았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전반부에는 닭장 속에 갇힌 닭들이 금지된 꿈을 꾸다가 고생을 겪고 탈출하는 내용이었다. 거의 '치킨 런'을 연상시키는 내용. 그렇지만 사냥개, 그리고 닭반장의 말들이 현대의 우리 사회를 풍자적으로 반영한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야기 전체에 깔려 있는 해학적인 요소들이 같은 내용이라도 좀더 판소리적인 분위기로 바꾸고 있었다. 닭할아버지가 닭 조상에 대해 설명할 때, '닭싸움'을 가져와서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싸움도 잘 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이 이야기의 상상력과 변용 능력이 뛰어나다는 단초를 보여주고 있었다.
창의 가사도 새로웠다. 분명 가락은 판소리 가락인데, 가사 내용이나 어투는 현대적이었다. 특히 꼬끼가 꼬비를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는, 가사만 들어보면 최신 가요의 이별 가사와 다르지 않았다. 전통적 음에 현대적 말. 약간은 어색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새로운 어울림. '어긋남의 합창'이라고 할까?
3장의 '트럭 운전사의 증언'에서는 해학적 아름다움이 매우 뛰어나게 드러났다. 역시 판소리는 이야기도 그렇지만 소리꾼의 재치와 능청스러움, 애드립이 빛을 발하는 장르이다. 그리고 혼자 하는 판소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연극처럼 움직이는 판소리극이다보니, 몸으로 표현하는 것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닭들의 꿈, 날다'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이야기라고 주저없이 말하겠다. '닭들의 꿈, 날다'의 이야기는 깊이가 있지만 가라앉지는 않았고, 그저 웃기는 듯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며, 새로움 속에서 원전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이야기의 깊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철학과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가벼운 듯한 개그도 그 속에 뼈를 감추고 있으면, 자지러지게 웃고 나서 묵직한 깊이가 느껴진다.
'닭들의 꿈, 날다'는 현대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들을 담고 있다. 통제된 사회, 꿈을 잃은 사회에 대한 건 물론이거니와, 비무장지대 안의 폭력과 파괴(지뢰밭), 분단으로 인한 이산의 아픔까지 드러낸다. 심지어 조류독감의 대유행과 그에 따른 닭들의 집단 살처분은, 마른 기침 한 번 해도 "당신 신종 플루 아냐?"라고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는 작금의 세태까지 풍자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깊이가 있는 작품은, 자칫 무거워질 수가 있다. 자신의 깊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없이 진지하게만 흘러가다가 진지함을 강요하게 되는 작품은 부지기수다. 잠수함이 내용물을 많이 실을 수록 그만큼의 공기도 많이 실어야 하는 것처럼, 문학작품도 깊이 가라앉을수록 부력을 일으킬 산소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닭들의 꿈, 날다'는 그 산소를 해학에서 찾았다. 특히 판소리 특유의 해학미는 작품 전반을 감돌며, 관객들이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도록 만들었다.
'닭들의 꿈, 날다'가 더욱 대단한 것은, 웃음이 그저 해학에 그치지 않고 창조적 상상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닭들의 꿈, 날다'에는 그냥 분위기 반전을 위한 웃음이 아니라, 닭, 독수리, 할머니 등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상상력이 작동하고 있다. '꼬끼'가 처음에 자신의 꿈을 밝히면서 "성대모사요!"라고 했을 때 그 엉뚱함에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성대모사가 작품 후반에서 서로 만날 수 없는 쌍둥이 할머니의 목소리를 전달해줄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변화했을 때, 웃음은 웃음을 넘어 희망으로 부상한다. 그 희망은 할머니의 죽음이 주는 슬픔까지도 새로운 원동력으로 바꿀 수 있는 마법이다. 할머니가 죽고 나서 슬퍼하고 있는 멍구(강아지)에게, 꼬끼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이미 내 안에 들어 있어!! 우리가 그걸 전해주자!!!"라고 말하며 슬픔을 극복하게 만들지 않는가?(대사가 정확한지는...;; 이래서 대본이 필요해요ㅜㅠ)
나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상상력은 '닭수리'였다. 다리 없는 독수리와 날개 없는 닭이 함께 하늘을 난다니! 날개 있는 독수리와 다리 있는 닭이 함께 하늘을 난다니!!!
'닭들의 꿈, 날다'는 '없는'이 아니라 '있는'에 주목했다. '없는'에 주목하면 장애가 되지만, '있는'에 주목하면 가능성이 된다. 말로 하면 쉬워 보이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이런 상상을 한다는 것은, 정말 UFO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상상력은 절망으로 가득찬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 다들 자신의 현실 속에서 부러지고 빼앗기고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여 절망한다. 솔직히 나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저 눈물만 흘리고 만다.
그러나 상상하면, '있는'는 주목하면,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주류가 아무리 강력하고 폭력적이라도, 결코 빼앗을 수 없는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를 들면... 희망, 사랑, 상상력, 의지,,, 이런 것들......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을까?
그런 엄청난 상상력이 원천이었는지, '닭들의 꿈, 날다'에는 심금을 울리는 대사가 많다. 생각나는 대로만 적어보면,
"비무장지대는 완전무장지대야."
"새들이 많다고 해서 새들의 천국인 건 아냐. 그리고 인간들에게도, 천국은 아닌 것 같아."
"우린 살아온 공간, 살아온 과정은 다르지만, 살아온 흔적, 살아온 슬픔은 같아."
"할머니의 목소리는 이미 내 안에 들어 있어!"
신기한 것은 그렇게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닭들의 꿈, 날다'가, 받아들이기 힘들다거나 버겁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 상상력은 충격을 주고, 충격을 이질감을 준다. 그 이질감이 왜 '닭들의 꿈, 날다'에는 거의 없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변용, 다른 말로 패러디 때문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닭들의 꿈, 날다'에는 다양한 패러디가 등장한다. 처음에 UFO를 발견한 데에서는 패닉의 <UFO>를 떠올렸다(패닉의 <UFO> 역시 상상력이 대단한 노래이다. 짓밟히고 죽어간 사람들이 UFO를 타고 다시 되돌아온다는 발상.). 조류독감 때문에 흰 옷을 입은 방역대원들이 닭들을 집단폐사시킬 때는 영화 <괴물>이 연상되었다. 새다리골절전문치료사인 할머니, 새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할머니는 알다시피 <흥보가>를 변용한 것이다. 그 외에도 철조망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새, 만나기 직전에 세상을 떠나는 이산가족들(소설 <숨쉬는 영정>)은 모두 한국 문학 작품 속에서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던 모티브들이다. 그렇게 익숙한 원전들이 기반이 되어 '닭들의 꿈, 날다'가 만들어졌기에, 상상력이 거리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닭들의 꿈, 날다'는 생각하면 할수록 더 쓸 말이 많아지는,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작품이다. 장르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한가지 정말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연 날짜가 너무 짧았다는 것!
앞으로도 '바닥소리' 소리꾼들, 그리고 '닭들의 꿈, 날다'를 만드신 여러 재주꾼들의 힘으로,
이런 명작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나누어졌으면 좋겠다.
Man of La Mancha(라만차의 사람) (0) | 2009.10.21 |
---|
클라이스트 (0) | 2009.10.11 |
---|---|
‘영등포 슈바이처’ 기적을 잇는 요셉의원 최영아원장 (0) | 2009.10.07 |
흠이 있는 진주 (0) | 2009.10.02 |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0) | 2009.10.02 |
"흥분이 내 성공의 비결이었다." (0) | 2009.10.02 |
‘영등포 슈바이처’ 기적을 잇는 요셉의원 최영아원장 (0) | 2009.10.07 |
---|---|
유일한 박사의 유언 (0) | 2009.10.02 |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0) | 2009.10.02 |
"흥분이 내 성공의 비결이었다." (0) | 2009.10.02 |
쓴소리는 천하를 살찌게 한다 (0) | 2009.10.02 |
유일한 박사의 유언 (0) | 2009.10.02 |
---|---|
흠이 있는 진주 (0) | 2009.10.02 |
"흥분이 내 성공의 비결이었다." (0) | 2009.10.02 |
쓴소리는 천하를 살찌게 한다 (0) | 2009.10.02 |
“희망의 첫 번째 형상은 두려움이며, 새로움의 첫 번째 형상은 경악이다” (0) | 2009.10.02 |
남들이 ‘보‘를 낼 때 ’가위‘를 내라. 그것이 ’돈‘이다
월터 P. 크라이슬러 - 충동적으로 구매하라
어린 나이의 크라이슬러는 돈도 학력도 없었다. 아버지는 지방 철도회사의 기관사였고 형도 똑같이 철도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크라이슬러도 고등학교를 졸업 후 자연스럽게 철도회사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것말고 달리 선택할 방도가 없었지만 정비공장의 일보다는 그래도 청소계 작업에 근무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이 크라이슬러가 훗날 빛나는 성공을 거둘 인물이 될 것이라 보여질 만한 구석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 그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기계광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기계에 대해선 무조건적일 정도로 열렬한 흥미를 갖고 있었다. 매일 정비공장에서 작업 중간마다 여러 종류의 기계를 살펴보고 만져보고 조립하는 일을 생각하며 커다란 희열에 사로잡히곤 할 정도였다. 이윽고 그는 청소계 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기계기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혼신의 정열을 기울여 열심히 공부한 끝에 20세가 되었을 무렵에는 베테랑 기계기사가 무색해질 정도로 기술과 지식을 겸비하게 되었다. 그는 엔지니어로서의 능력을 무기삼아 미국 중서부를 종횡무진하다시피 하며 각지의 철도회사에서 기사장과 공장의 총감독으로 맹활약하게 되었다. 그러한 와중에 그는 기계에 대한 순수한 흥미를 느끼는 것 외에 기계를 통한 수송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현장의 작업 속에서 기계를 이용한 운송업의 전망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시카고 모터쇼에서 ‘로코모빌(1899년 제작된 증기자동차)’이라 이름 붙여진 꿈의 자동차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크라이슬러는 뒷날 이때의 감회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 자신도 모르게 그 차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4일간 내내 자동차쇼가 벌어진 현장을 떠날 수 없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자동차를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순수한 호기심이 그의 몸과 마음에 소용돌이친 것이다. 더구나 당시의 자동차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고가품일 때였다. 더구나 모터쇼에 출시된 ‘로코모빌’은 최신 고급차였기 때문에 그는 끙끙거리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 은행에서 자그마치 5천 달러나 되는 거금을 빌려다 그 자리에서 자동차를 구입했다. 그리고 열차에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보통 사람 같으면 고가의 차를 구입한 뒤에는 반드시 드라이브 삼매로 나날을 보내기 쉽지만 크라이슬러는 만들어보고 싶은 마니아답게 자기 신념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그는 로코모빌을 단 한번도 운전해보지 않고 가져온 그대로 분해했다 다시 조립했다. 그 과정이 끝나고 나서야 한번 시승을 해보았고 시가지를 한 바퀴 주행해본 다음, 다시 분해했다가 재차 조립했다. 이렇게 분해-조립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던 것은 로코모빌을 하나의 교과서로 삼아서 철저하게 연구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를 보면서 친구들은 “저 친구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거 아냐?”라고 조롱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가 훗날 미 자동차업계 빅3의 하나로 군림할 크라이슬러사 창업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거액의 빌린 돈을 갖고 로코모빌을 충동 구매했을 당시, 그의 내면에는 창업의 힌트 같은 것도 없었고 최신의 수송수단에 투자해보겠다는 생각 같은 것도 없었다. 그는 구매 당시 참을 수 없이 좋아하는 것을 만났을 때의 짜릿한 ‘흥분‘만을 느꼈을 뿐이라고 했다. 뒷날 크라이슬러는 “당신의 성공 비결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성공의 비결은 ‘열성’이라기보단 ‘흥분(exciting)’이라고 봅니다. 나는 사람이 흥분하는 것을 볼 때 가장 좋아요. 사람은 흥분했을 때 인생을 성공시킬 수 있으니까요.”
흠이 있는 진주 (0) | 2009.10.02 |
---|---|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0) | 2009.10.02 |
쓴소리는 천하를 살찌게 한다 (0) | 2009.10.02 |
“희망의 첫 번째 형상은 두려움이며, 새로움의 첫 번째 형상은 경악이다” (0) | 2009.10.02 |
지금껏 이렇게 해 왔다고? (0) | 2009.10.02 |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0) | 2009.10.02 |
---|---|
"흥분이 내 성공의 비결이었다." (0) | 2009.10.02 |
“희망의 첫 번째 형상은 두려움이며, 새로움의 첫 번째 형상은 경악이다” (0) | 2009.10.02 |
지금껏 이렇게 해 왔다고? (0) | 2009.10.02 |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법 (0) | 2009.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