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즐겨읽기] 일흔일곱 존 르 카레, 미국식 정의를 고발함 [중앙일보]
김승욱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432쪽, 1만2000원
르 카레가 돌아왔다. 3년만이다.『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로, 오락거리로 치부되던 스파이물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던 바로 그 작가다.
일흔일곱의 스릴러 작가에게 세상은 어떤 것일까. 60년대 초 30대의 나이에 벌서 스릴러의 거장 반열에 오른 작가가 ‘이미 태어난 손주들과 앞으로 태어날 손주들을 위해’ 썼다는 이 책이 보여주는 세상은 어둡다.
독일 함부르크에 홀연히 나타난 무슬림 청년 이사를 중심으로, 불법체류자, 테러, 인권, 보수와 진보 등 거대 사회와 개인적 양심의 문제를 파고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두운 세상은 현재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세상이고, 어두운 현실은 외면한다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봐라. 일단 현실을 목도하는 것 자체가 그 해결의 첫걸음일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말한다.
때문에 여름철 휴가지에서 뽑아들 가벼운 터치의 스릴러를 원한다면 이 책은 아니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어두운 세상으로 끌려가는 느낌은 어떤 점에서 불편하기조차 하다. 구성이나 문체도 결코 간단치 않다. 설렁설렁 넘기다간 다시 앞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책을 붙잡게 하는 힘은 ‘불편한 진실’로 끌고 가겠다는 작가의 뚜렷한 문제의식에서 나온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거창한 이름아래 ‘아무 생각 없는 정의’가 어떻게 자행되고 있는지 냉철한 눈으로 펼쳐 보여주겠다는 목표는 마지막까지 충실하게 이뤄진다.
테러 위협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95%의 선한 마음은 도외시하고 5%의 나쁜 마음-그게 진짜 나쁜지, 또는 그 악의가 실행되는지도 모르는-을 모든 것으로 치부해 처단하는 게 ‘정의의 실현’이고 ‘보복을 위한 정의’로 간주되는 21세기 지구의 현실은 참담하다.
한 인간의 권리는 공공을 위한 정의라는 말 한마디에 간단하게 짓밟힌다. 죄는 없을 수가 없고 끝까지 버티는 놈은 있을 수 없다는 것, ‘미국식 정의’는 그렇게 실현된다.
테러와의 전쟁을 이렇듯 정면으로 다룬 책은 흔치 않다. 물론 작가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쯤 작심하고 읽어볼 만한 무게를 가진 책이란 점만큼은 분명하다.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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